잔디를 입양하고 얼마 되지 않아 강아지를 9년 정도 키운 친구를 만났었다. 같이 산책도 하고 수다도 떨었었는데, 친구가 이런 질문을 했다.
잔디가 말을 할 수 있다면 무슨 말이 제일 듣고 싶어?
강아지 키우기 초보인 나는 이런 작고 부드러운 소중한 생명체는 처음이었고, 매일매일이 귀엽고 사랑스러웠기에 당연히 '사랑해'였다. 잔디를 사랑하는 마음이 아무리 숨겨도 삐져나와 어쩔 줄을 몰랐었다. 친구에게 되묻자 친구는 '엄마, 나 아파.'라는 말이 가장 듣고 싶다고 했다. 강아지를 키우다 보면 아마 보호자들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아파'라는 말일 것이라고 했다. 그 당시에는 방정방정깨방정 잔디였기 때문에 그 말 뜻이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사무치게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고용량 스테로이드 치료로 인해 잔디는 살도 근육도 점점 빠졌고, 중간에 변이 좋아지기도 했지만, 방심하면 다시 시작되는 설사 탓에 식욕도 잃었다. 동물병원 원장님이랑 같이 논문도 찾아보면서 일단 식이를 바꿔야 한다고 해서 새로운 단백질을 찾아보았다. 닭이나 소에서 유래된 단백질이 아닌 토끼, 캥거루 등의 새로운 단백질로 바꿔보자고 하셨다.
그동안 크고 작은 파티 때마다 잔디의 케이크를 책임져주셨던 수제간식 전문점 사장님께 달려갔다. 혹시 캥거루 고기로 사료 크기 정도의 간식을 만들어주실 수 있냐고 물었다. 잔디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슬퍼해주시며 흔쾌히 만들어주시겠다고 하셨다.
하루하루 마음 졸이며 잔디의 변의 상태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한 달을 보내며 대학병원 예약 날짜가 다가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희망을 품는 일밖에 없었다. 잔디가 한 달 이상 아프자 점점 병원비가 부담되기 시작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네가 이전처럼 건강해진다면 괜찮았다.
대학 병원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온갖 걱정이 머릿속에서 뒤엉켜 있는데 멀리서 산책 중인 까롱이가 보였다. 둘은 반갑게 인사를 나눴고, 까롱이의 견주는 잔디의 핼쑥함을 바로 알아차렸다. 눈물을 겨우 참고 잔디의 상황을 얘기했다. 그래도 병원 진료받기 전 잔디랑 친한 까롱이랑 인사를 나눠서 다행이다.
우리 예전처럼 다시 뛰어놀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