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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뇨미 Jan 15. 2024

생명에 경제적 개념이 개입되면?

수평아리 감별하기

영화 ‘미나리’에서 이민 가족의 가장이던 ‘제이콥’의 직업은 병아리 감별사다. 파란 눈동자를 가진 서양인보다는 검은 눈동자의 동양인이 눈의 피로감이 덜해서 어두운 불빛 아래서 일을 더 오래 할 수 있고, 손도 작아서 병아리를 쥐고 성기를 판별하는 것이 유리하여 서양에서는 이 직업 내에서 동양인의 비율이 더 높다고 한다.


병아리 감별사는 갓 태어난 병아리의 성별을 감별하는 직업이다. 약 3~5초 이내에 97~98% 이상의 정확도로 수평아리를 판별해내야 한다. 수평아리는 알도 낳지 못하고, 사료를 먹이는 것에 비해 성장 속도가 더뎌 도태시키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럼 이렇게 판별해낸 수평아리는 어떻게 될까?

바로 옆에 기계에 넣어 ‘분쇄’한다.

그나마라도 질식시키 후 분쇄기에 넣으면 다행(?)인데, 맨정신으로 분쇄기에 들어가 가루가 된다.


그럼 이것은 무엇이 될까?

어이없게도 ‘단백질원‘이 된다.

동물 사료 포장지 뒷면에 사료의 원료들이 나와있는데, chicken meal이라 써있는 것을 ‘매우 많이’ 볼 수 있다.(여담으로 이것이 안써져 있는 사료만 골라도 좋은 사료다)

뒤에 ‘meal’이 붙은 것은 사람이 먹지 않는 물고기의 내장들, 동물의 내장들이 포함되기도 하고, 이렇게 수많은 수평아리가 포함되기도 한다.

한마디로 사람이 먹지 않고 쓰레기로 버린 부산물인 것이다.


작은 동물을 소위 ‘안락사’ 시킬 땐, 여러 방법이 존재하지만, 요즘 그나마 인도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이산화탄소 질식법이다.

그러나 ‘경제성’을 생각한다면 이마저도 사치다.

그저 분쇄기에 집어넣는 것이 돈도 아끼고, 효율성도 증가하니 이보다 ‘경제성’이 높은 것을 찾을 수나 있나?


보통 실험동물에 이산화탄소 질식법을 적용할 땐 비커에 이산화탄소를 가득채운 후 실험동물을 넣어 몇 분 넣어두고 안락사를 시키는데, 비커가 아닌 큰 공간을 활용한다고 해도 이 방법을 수 만마리의 수평아리에 적용시키는 것을 불가능에 가까워 보인다.

어차피 분쇄기로 갈아버릴 건데, 중간에 비용이 드는 과정이 추가될 뿐이다.


그래도 우리 사회가 항상 살기 힘들어보이고, 늘 분쟁하며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좋은 방향으로도 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런 수평아리같은 작은 생명에 관심을 가지고 변화를 추진하기 때문이다.

유전자 가위, AI활용, 레이저 기술 등을 활용해 부화 이전에 성별을 구분할 수 있는 기술이 생기고, 수평아리를 분쇄기에 대량으로 도살하는 관행을 금지하는 법이 추진되고 있다.


동물복지의 선두주자라고 생각되는 나라인 독일에서도 2021년에야 수평아리 도살 금지에 관한 법이 통과되고 2022년부터 시행된다고 하니, 조금은 놀랍다. 그래도 역시나 법을 가장 먼저 제정했으니 선두주자는 맞다. 달걀 상태에서 레이저로 암수를 구별한 후, No-kill eggs라는 이름으로 다른 달걀들보다 비싸게 판매된다고 한다.


이제 중요한 건 소비자다.

소비자도 경제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당연히 가격에 민감하다.

암탉을 평생동안 옴짝달싹 못하도록 자기 몸만한 공간에 가두고, 세균이 득실득실한 환경에서 병은 걸리지 않도록 항생제를 왕창 투여하고 생산성을 위해 산란촉진제를 투여하며 알만 낳게 한 후, 생산성이 떨어지면 마지막에 엄청나게 굶겨서 털이 다빠지도록 스트레스 받게 한 후, 다시 원래 상태로 되돌려 마지막으로 낳을 수 있는 알을 낳게 한 후 죽인 암탉의 달걀과,


A4용지만한 공간을 벗어나 풀 위에서 걸어다니며 자기가 좋아하는 벌레도 잡아먹고, 다른 닭들과 지내기도 하고, 풍부한 환경 속에서 알을 낳게한 후 ‘동물복지’라는 이름을 붙여 판매하는 이전보다 두배 정도는 비싼 달걀.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물론, 나는 후자를 선택했다. 동물복지 측면도 있지만, 나에게 이로운 면을 생각한 측면도 있었다. 당연히 항생제를 왕창 맞지 않고, 스트레스 덜받으며 자란 암탉이 낳은 달걀이 내 몸에도 이롭기 때문이다.

 

특히 2017년 살충제 달걀 파동 이후 이런 인식은 조금 확산되어서 그나마 동물복지 달걀을 선택하는 사람이 이전보단 많아진 것 같다.

예전에는 인터넷으로만 농장주에게 직접 사곤 했었는데, 요즘엔 큰 마트에서도 흔하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동물복지 달걀보다 더 비싼 No-kill eggs는 어떤가?

암탉이 알을 낳은 환경은 같은데, 수평아리 죽이는 방식만 다른 그 달걀.


이제는 정말 가치 소비의 문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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