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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러너 Jun 04. 2019

42.195 마이런

달리기 1년 차 / 10km에서 풀코스까지(1)

숨이 차오르며 마지못해 따라오는 발이 묵직하게 느껴졌다

무거운 것은 발뿐이 아니었다


딱 집어서 배,

배가 무거웠으며 총체적 위장의 무게가 든든하게 느껴졌다


오랜만의 대회 참가인데 이렇게 소화불량으로 무너지다니



지난 11월 춘천 국제 마라톤에서의 얘기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면서 처음으로 서울 바깥의 대회에 나가게 되어 흥분되고 춘천에 가서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닭갈비도 사 먹고 막국수도 먹고

먹을 수 있는 춘천 명물은 전부 잔뜩 먹고 오자!!



대회 전날 닭갈비를 먹었다

기대가 커서였나

3인분이나 먹어놓고 할 소리는 아니지만 생각보다 맛이 없었다

실망이다

이럴 바엔 다시 공복 상태로 돌아가고 싶다


시무룩하게 길을 걷는데 새우구이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때마침 대하의 계절이 아닌가


"대하 한판 주세요"

(주시는 김에 소주도 주세요)


일단 마라톤이고 뭐고 먹고 마시고 푹 자 버렸다



다음날

일어나 보니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춘천의 단풍과 쌀쌀한 가을비, 그리고 퉁퉁부은 내 얼굴과 소화가 덜 된 동그란 배를 달고 대회장으로 향했다






경험이 짧은 입장에서 비 오는 날의 달리기가 부담스럽기는 했지만 쌀쌀한 날씨에 몸을 녹이느라 근처에서 파는 뜨끈한 어묵도 사 먹고 커피도 마셨다

그 와중에 빗줄기는 점점 굵어져 매점에서 우비도 샀다



아름다운 춘천댐을 돌며 경관을 만끽할 수 있는 건 풀코스 참가자들의 권리일 뿐

10km를 달리는 나는 닭갈비집들이 즐비한 대회장 근처의 언덕을 넘어 운동장, 체육관 건물들이 양쪽에 펼쳐진 경사 있는 일반 도로를 달리게 됐다


언덕 하나를 넘을 때마다 배가 당기고 몸이 무거우니 호흡도 엉망, 묵직한 위장을 받치느라 다리는 다리대로 힘들었다


이 대회를 계기로 깨달음을 얻어

달리기 전에 위장을 비우는 습관이 생기긴 했다


비는 금세 그쳤지만 공기는 여전히 쌀쌀해 손이 시렸고

나중엔 지릿지릿하게 전기가 오르듯 손이 굳어져 몇 번이나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손을 풀어줘야 했다

장갑을 끼고 달리는 이유도 이때 알게 됐다

뭐든 직접 경험해야 깨달음이 빨라진다


겨우 10km를 뛰면서 중간중간 걸을 수밖에 없었다

안이하게 어떻게든 되겠지 라는 마음으로 대회에 나선 나는 결국 기록으로 응징받았다



닭갈비,대하구이와 맞바꾼 기록이다


저 기록도 세월아 네월아 달리고 있는데 누군가

"아직 57분 대야! 힘내!!"라고 외치는 소리 듣고 뒤늦게 발모터를 장착

단 한 번 뛰는 것처럼 뛰어 들어와 얻을 수 있었던 내용이다






이 대회를 끝으로 2018년의 마라톤 대회 참가가 끝났다


그 한 해동안 총 다섯 번의 10km 대회에 나갔었고 기록은 첫 참가 때 1시간 4분을 기록했던 것을 제외하곤 어떻게든 한 시간 내로 들어오고는 있다

기록만 두고 보면 참 발전없이 일관성있는 러닝을 하고 있단 생각도 든다 



가장 힘들었던 대회는 매년 봄 인천에서 열리는

인천 국제 하프 마라톤 대회


대회가 열리는 문학 운동장이 가파른 언덕 위에 있어 기어 올라갈 때마다 심장을 꺼내 손에 들고 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작년과 올해, 두 번 10km 부분에 참가했었고

내심 10km는 이 대회를 끝으로 더 이상 나가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이 대회를 택했던 이유라면 작년에 정말 힘들었던 이 대회의 같은 코스에 나가 정복을 해보고 싶단 오기가 발동했기 때문이다


오르막길에 약한 나는 올해의 대회에서도 코스 마지막의 가파른 언덕 위 운동장 귀환을 기다시피 마치긴 했지만 쉼 없이 달려 달리기만으로 완주하는 데 성공했다



기록이 고만고만한 것은 내 발이 원체 느리기 때문이다


기록을 보면 걸어 들어오나 뛰나 별반 차이가 없지 않나 하실 수도 있겠지만

놉!

거북이처럼 달려도 걷는 걸음도 못 이길 기록은 아니다

어떤 못난 뜀박질도 걸음보단 빠르다

달리기를 위해 길에 나서는 사람들이 모두 멋진 폼으로 좋은 기록에 들어오는 건 아니다




당시의 총기록을 보면 남녀 총 2819명이 대회에 참가했고 그중 나는 756번째로 골인했다

쁘지 않다


여성 참가자 704명 중엔 79번째 완주자였다

이것 또한 나쁘지 않다



저 앞에 들어오는 분들은 선수도 있고 달련된 러너들도 포함되어 있다

꾸준히 뛰어본 경험자들은 보통 45~50분대에도 들어오는 것 같지만 어쩌겠는가

경험과 상관없이 타고난 발이 느린데


어차피 제한 시간은 1시간 30분이고 마지막 출발주자 기준이니 늦더라도 골인할 시간은 충분하다

중간에 포기만 안 한다면


기껏 참가비까지 내고 나갔는데 기죽지 않고 내 몫의 시간 안에 내가 할 수 있는 완주를 마치면 그걸로 된 거다

내가 날 던 기 던 다들 본인 레이스에 바빠 아무도 신경 안 쓴다

주변 신경 쓰며 위축되지 말자



내년부턴 이 대회의 하프코스에 도전할 계획인데 코스는 똑같다

10km 뒤로 쭉 달려 송도의 반환점까지 갔다가 다시 그 길 그대로 달려 경기장 안으로 돌아오면 된다

경기장 언덕을 오를 때가 되면 또 앓는 소리 하며 심장과 신경전을 벌이겠지만 그래도 두 번이나 통과했던 피니시 목전의 그 길에서 퍼지지는 않겠지


예전엔 문학 운동장이라고 하면 야구밖에 생각이 안 났는데

(여기서 먹는 사발면과 떡볶이가 그렇게 맛있다)

이젠 여기를 달렸고 여길 달리며 지날 때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내 위주의 경험이 생겼다

내게 문학 운동장은 정복의 땅이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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