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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팽이러너 Oct 12. 2019

꼴찌라도 마라톤

일단 시작은 운동화를 신는 것부터

달리기를 해볼까 싶어 신발장을 열었다

운동을 하지 않아도 운동화는 차고 넘친다

운동이 끔찍하다는 인간이 농구화는 왜 가지고 있을까

(심지어 맞는 사이즈가 없다고 무려 10mm나 크게 산 조던 슈퍼플라이 슬램덩크 한정판이다)

이렇게 운동화를 사들이는데 많은 돈을 썼단 말인가

넘치는 신발들 속에서 달리기에 적당한 신발을 찾아봤지만 딱 짚어 그 목적의 운동화만 없다

할 수 없지

제일 비슷한 신발을 골랐다

부끄러운 형광 핑크는 분명 한 때 유행했던 컬러였긴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꺼내보니 이런 신발을 사는데 지갑을 열었던 자신의 안목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꺼내 신을 당시엔 몰랐지만 기가 막히게도 이 운동화가 러닝 용도인 건 맞다고

(구매 당시엔 전혀 몰랐던 사실이다)

운동을 하느냐 마느냐의 갈등은 복장 장착에서 첫 해소를 맞이하는데 일단 엉덩이를 떼고 옷을 입기까지가 힘들지 준비를 하고 현관을 나서는 순간부터는 빨리 마치고 집에 돌아오고 싶단 마음이 발걸음을 재촉하기 문이다

(말했듯이 난 이상한 부분에서 급한 성격이 발동된다)

지금은 덜하지만 운동 초반에는 마지못해 때우듯 달렸던 날들이 대부분이었다

스스로 시작했음에도 힘들고 귀찮은 게 사실이기도 하고 혼자 꾸준히 운동 상태를 유지한다는 게 운동 강도를 떠나 결코 운 일이 아니다

먼저 운동할 장소를 찾아야 했는데

광고의 한 장면처럼 한강대교를 박력 있게 달린다거나 혹은 강 주변의 공원 산책로를 따라 여유 있는 조깅, 또는 해 질 녘의 남산공원과 성곽 주변을 따라 달리는 활기찬 모습 등은 내 생활 반경의 풍경과 맞지 않았다

한강도 남산없으며 성곽도 당연히 없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동네가 완성되어 번화하지만 내가 사는 동네는 처음 이사 왔을 당시엔 인구 적은 신도시로 신호 무시는 기본이고 밤마다 폭주하듯 달리는 자동차들로 인해 교통사고가 빈번해 이런 길에 나가 달렸다간 로드킬을 당해도 이상할 것 없을 교통 무법 지대였다

다행히 가까이에 근린 체육공원이 있어 트랙을 걸으며 산책 같은 걷기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걷기가 운동이 되기엔 한계가 있다

한동안 트랙 안에서 걷다 뛰다를 반복한 끝에 내게도 달리기가 가능한 능력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확실한 희망이 싹트게 되면서 운동장 밖으로 나가보고 싶단 충동이 일었다

그러나 어디를 뛴 단 말인가

뛸 장소 물색 외에도 마음에 걸리는 부분은 또 있었다

함께 달릴 사람이 없다

혼자 보란 듯 달리기엔 타인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눈길을 끌고 싶지 않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뛰는 폼이 우스꽝스러워 비웃으면 어쩌지

의지가 될 동료가 필요하다면 러닝 클럽에 가입을 하거나 정기 러닝에 참가해 함께 달리는 좋은 방법이 있긴 하지만 비사교적인 내 성향으로 감당하기엔 달리기외의 부담과 스트레스가 너무 클 것 같았다

한참 후 마라톤 대회 중 만났던 참가자로부터 조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마라톤이나 달리기는 혼자 하기엔 정말 힘든 운동이고 함께 뛸 동료가 있거나 하다못해 누군가 자전거로라도 동행을  한다면 걸음이 한결 가볍게 느껴질 거라는 그 말씀에 공감하면서도 지금 역시 혼자만의 홀가분함을 포기하지 못하는 걸 보면 혼자 달리는  이 방식의 러닝이 내게 잘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염려되고 나를 움츠러들게 했던 타인의 시선에 관한 문제는 남편의 한마디로 의외로 간단하게 정리가 됐다


"아무도 신경 안 쓴다"

"네가 뭘 하든 아무도 관심 없다"


정말 그랬다

그런 것 같았다

잠깐은 눈에 보이고 뭐라 생각할 순 있어도 돌아서면 까먹을 정도의 관심 없는 타인의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며 달리는 행위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됐다

한 동안은 아파트 커뮤니티센터에서 러닝머신 운동도 했었는데 춥거나 덥거나 혹은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정해진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은 마음에 들지만 아무래도 장소의 특성이 있다 보니 운동에 의욕을 불러일으키는 분위기는 아니어서 관심이 시들해졌다

(이웃 친목과 사교의 장이 된 듯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무료나 다름없는 공공시설이다 보니 트러블의 요소가 복병처럼 곳곳에 잠재되어 있다)

꾸준히 뛸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한 끝에 적당한 장소를 찾았다

집에서 2km 정도 떨어진 인근 해변 공원이 그 장소였다

공원까지 달려가는 2km는 워밍업을 하기에도 충분했고 공원 왕복이 딱 10km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코스를 좀 더 넓혀 20km 가까이 달리는 것도 가능했다

(뛸 수만 있다면!)

이 주로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물을 마실만한 곳이 없다는 점인데 물병을 지니고 다니기가 번거로워 빈손으로 달리러 나갔다가 후회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음료 자판기도 반환점을 돌아 뛰어간 만큼 돌아갔을 무렵인 10km 도착 지점에 있기 때문에 정말 참기 힘들 때는 근처 족욕장의 발 닦는 세족대 수돗물을 벌컥벌컥 마실 때도 있었다

 운동은 해가 완전히 넘어가기 전 시간대에 하고 있고 해가 긴 여름은 오후 7시경, 10월 들어서부턴 5시를 안 넘겨 공원에 도착하도록 하고 있다

운동 시간을 정하기에 앞서 이른 아침의 상쾌한 달리기도 시도해 봤지만 잠을 포기할 만큼 운동을 좋아하지는 않다 보니 일찍 일어나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운동을 포기해버리기 전에 냉큼 저녁에 뛰는 것으로 스스로 합의를 봤다

실외 달리기는 날씨에 대한 적응이나 실제 대회에서 있을 수 있는 변수들을 체험해볼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별생각 없이 꾸준히 달리는 사이 언젠가부터 달린다는 행위 자체에 대한 부담도 점점 덜 느끼게 됐는데 강제가 아닌 스스로 원해서 달리고 있다는 납득의 결과가 아닐까 싶다

몇 km를 달리던 운동은 노력과 공이 필요하다

단 1km를 달리더라도 일단 운동화를 신어야 시작이 되는데 할까 말까 하는 망설임에서 몸을 일으키고 신발을 신는 순간이 운동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결코 짧지 않다

달리기 시작하면 숨이 찰 텐데, 힘도 들 텐데라는 식으로 생각이 많아지겠지만 일단 발을 떼야한다

조금만 달려도 숨이 찬다? 당연한 얘기다

 세계 최고 레벨 선수인 킵초게도 마라톤은 힘든 운동이며 달리기에서 오는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힘든 운동을 하는 사람이고 난 조깅 같은 편안한 달리기를 할 것이기 때문에 힘이 덜 들고 다리도 덜 아플 거라는 착각은 금물이다

10km쯤 달리고 나면 누구나 똑같이 힘들 수밖에 없다

 느리다고 해서 빠른 사람보다 덜 힘든 게 아니다

이 점을 의식하면 달리기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오늘은 조금 덜 달려볼까, 하루 쉴까 하는 생각이 내 다리를 붙들고 늘어져 결국 주저앉히고 마는데 기껏 생긴 운동 근육이 사라진 며칠 후 후회하며 다시 운동화를 신는 어리석은 반복을 되풀이하던 중 내게 맞는 방식의 묘수를 찾아냈다

저녁에 달리는 날은 점심을 간단히 먹고 간식을 참으며 달리기에 좋을 가벼운 위장 상태를 유지하는데 운동이

끝난 후에는 뭐든 그 날 가장 먹고 싶었던 것을 먹는 것이다

메뉴는 주로 쌀국수나 햄버거, 치킨 등으로 따끈한 음식 포장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즐거움을 위해 기꺼이 운동을 나가게 됐을 만큼 적어도 내겐 효과가 있었다

살살 달래서 길에 내놓으면 정해진 거리를 달리는 것으로 몸과 마음이 받아들인 것 같다

이왕 이렇게 된 것 쌀국수의 효력이 있을 때 더 부지런히 달려둬야 한다

  5km도 좋고 10km면 더 좋고 거리는 그날 내가 뛸 수 있는 만큼으로 정하고 일주일 세 번의 규칙을 지키면서

포장된 저녁 봉지의 유혹에 홀린듯한 마음가짐으로 스스로의 등을 떠밀고 있다

리기가 즐거울 수 있게 스스로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것도 운동의 동기부여로 충분하지 않을까





 과거의 그리고 현재의 운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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