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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달팽이러너
Oct 15. 2019
42.195 마이런
가을의 하프 코스 완주기 / 2019 서울 달리기 대회
오랜만에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에 나가게 됐다
달리기 하기 좋은 계절이지만 비교적 이른 시간에 시작되다 보니 (오전 8시) 쌀쌀한 아침 기온이 걱정됐다
게다가 지난 송도 대회 후 다리 통증이 아직 남아있어 그 후로 충분한 운동을 하지 못해 달리기에 대한 부담으로 밤사이 잠을 설쳤다
기분 탓인지 배도 아프고 수면 부족에 차가운 아침 공기까지 걱정과 부담을 지고 이른 시간에 대회가 열리는 서울 시청 앞에 도착했다
도착시간은 무려 6시 40분
너무 일찍 왔나 싶었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있었다
오늘의 대회는 시청 앞을 출발해 뚝섬 한강공원에서 끝나는 21.0975 하프 코스 달리기다
종로에서 동대문까지 메인 거리를 달린 후 청계천을 지나 한남대교 아래에서 반환점을 돌고 뚝섬 한강공원으로 들어간다
먼저 시청에서 동대문이 3km밖에 안된다는데 좀 놀랐다
(5km는 뛰었으려니 싶어 고개를 들었는데 3km라고 붙어있어 내심 실망했다)
함께 출발해 시청 앞에 내려준 남편은 그대로 도착지인 뚝섬으로 먼저 출발했고 혼자 남은 나는
맥도날
드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꽤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으나
스트레칭을 하다 보니 어느새 출발 시간
다른 대회들과 달리 오픈 국제 부분에 이어 10km 코스가 먼저 출발됐지만 워낙 참가 인원이 많아 그룹이 둘로 나뉘었고 이후 하프코스 출발 후 10km 후미 부분과 섞여 동대문까지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달릴 수 있었다
이게 얼마만이냐
늘 얼마 안 되는 참가자들 사이에서 한없이 뒤로만 처지다가 수많은 달리는 사람들 속에 섞여있자니 신나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렇듯 기분을 끌어올려 꽤 의욕 있게 출발선에 섰는데 아.. 배가 또 살살 아프다
출발 3분 전이라 빠져나가기도 그렇고 못 참을 정도는 아니어서 일단 그대로 가보기로 했지만 종로 거리를 통과하는 동안 내내 뱃속 상태에만 신경이 쓰였다
그 와중에 그간 운동을 쉬었던 내 다리는 오랜만에 날을 만나 보폭을 넓혀 앞으로 쭉쭉 내달리고 있었고 모처럼 선두 부분에서 밀리지 않고 잘 따라잡았지만 결국 5km를 조금 지나 청계천에
접
어들면서
위험 수위가 높아짐을 느꼈다
팔뚝에서 시작된 소름이 목을 타고 얼굴로 올라오기 시작한 것이다
망했다 ㅜㅜ !!
화장실을 찾기로 했다
먼저 스타벅스나 대형 카페를 찾았지만 청계천 뒷 길에 그런 카페가 있을 리가
없다
보이는 건물마다 혹시 화장실을
써
도
되는지
물어볼까 고민하는 사이 휙휙 지나쳐 조금 있으면 공원으로 들어설 판이었다
급하다
빨리 어딘가 들어가야 해!
순간 구세주와도 같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청계천 박물관>
처음엔 그냥 지나쳤다가 저곳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달리기를 멈추고 되돌아갔다
주말의 이른 시간임에도 다행히 문이 열려 있었다
나 같은 사정의 사람들이 좀 더 있었는지 앞에서 화장실 안내를 해주시는 분도 계셨다
건물에 들어서기 전 뒤로 달려오던 많은 사람들이 신나게 달려 주로를 빠져나가는 모습을 보자니 나 자신이 한없이 뒤로 처지는 기분이라 착잡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절망도 함께 피어올랐다
'오늘도 나의 달리기는 망했구나'
7분 정도 후 다시 밖으로 나왔다
(최선을(!) 다한 시간대였다!!)
다행히 아직 달려오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 사이 섞여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늦었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기특하게도 그만 뛸 마음은 없었다
설마 두 시간 반 안에 못 들어가겠나라는 마음으로 심기일전 달렸다
10km 지점에 도착해 물을 마시고 숨을 돌렸다
한참 여름 달리기에 빠져있을 무렵엔 이 정도 달리기는 일도 아니었는데 최근 운동 밸런스가 무너져 걸음이 느려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보폭을 벌리고 싶었지만 뒤로 갈수록 마음 같지가 않았다
집중이 흐트러지기 전 좀 더 달려두지 못했다는 게 후회됐다
달리는 분위기는 내내 활기
넘쳤다
하프 코스를 달리는 러너들은 확실히 10km를 뛰는 러너들에 비해 주력도 좋고 실력이 한수 위라는 사실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굉장히 큰 차이가 있다거나 넘보지 못할 저 세상의 달리기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10km를 완주할 능력이 된다면 하프 코스 달리기도 충분히 가능하다
서울에서 열리는 대회들의 큰 매력은 넘치는 활력이라 생각한다
논두렁 달리기를 펼쳤던 공주, 물도 그늘도 심지어 달리는 사람도 없었던 송도를 거쳐 서울로 가니 막 상경한 시골 사람처럼 대회의 부분 부분이 모두 즐겁게 느껴졌다
비록 내가 소속된 클럽은 아니지만 응원이 고맙고 재밌었고 많은 사람들의 뒤에서 달리며 러닝화나 러닝 복장, 각 클럽의 로고 등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좀 더 기록이 잘 나왔더라면 즐거움이 배가 됐겠지만 급작스러운 장트러블을 통제할 수 있을 리가
예전 마라톤 기사에서 봤던 대회 에피소드가 떠올랐다
중국의 선수가 대회 도중 급 신호가 왔는데 대회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 팬츠에 실례를 하면서 완주를 했다는 입이 떡 벌어지던 충격적인 내용이 한번터면 내 일이 될 뻔했다니 상상만으로도 식은땀이 난다
15km 지점을 지나고부턴 시간도 남은 거리도 쭉쭉 지나갔던 것 같다
도착 지점은
지난여름 나이트 레이스가 열렸던 장소였는데 이렇게 다시 돌아오게 될 줄이야
당시의 폭염이 상상이 안될 만큼 이날은 화창하고 상쾌한 가을 날씨였고
평소의 절반만 달려도 된다는 홀가분함과 아직도 함께 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이 기분 좋은 자극이 됐다
운동이 부족해 다리의 힘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긴 했지만 적어도 이날은 더 달리지 않아도 됐기 때문에 마지막 500m에선 남은 힘을 모두 쥐어짜 피니시라인까지 내달렸다
기록은 2시간 13분
초반에 잘 달렸던 기세로 좀 더 힘을 냈더라면 좋았을 것을
화장실에 들렀던 그 시간이 마냥 아깝기도 했고 그 후 좀 더 빨리 달리지 못했다는 자책에 아쉬움도 컸다
거의 다 와서 2시간 10분 페이스메이커가 스쳐 지나갈 때 힘을 내 뒤에 따라붙었다면 어땠을까
평소
하프 거리를 달릴 때 앞에서 힘껏 달려 다소나마 시간을 벌어두고 힘이 부족한 후반부는 천천히 달리며 안배를 하는 타입이라 막판에 따라붙기에는 솔직히 힘이 달렸다
이른 아침 대회장까지 기꺼이 동행해준 남편에게 미안했던 기록이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하프 거리를 완주할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을 찾았다는 작은 소득을 올렸으니 다음 언젠가는 좀 더 좋은 기록으로 들어와 기쁘게 해주고 싶다는 의욕이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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