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낭만의 끝에서 중년의 위기를 극복하다
16세기 유럽은 그야말로 대해적 시대였다. 오갈 곳 없는 불쌍한 영혼들이야 바다에 몸을 맡긴 채 해적이 되어 오늘내일을 살아가곤 했지만 문제라면 이런 것이다. 충분한 유산을 물려받은 평범한 귀족이, 망망대해를 꿈꾸며 해적이 되기를 바라온 것이다. 그러나 그가 원한 것은 망망대해의 꿈이었을까, 아니면 진정한 자신이었을까. 섣부르게 띄운 배는 목적지도 정하지 않은 채 망망대해를 끝없이 헤맨다. 앞으로 자신이 맞닥뜨릴 거대한 파도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한 채로...
16세기는 또한 바로크 사조로서 클래식 음악의 태동기이기도 하다. 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바흐, 세련된 선율이 아름다운 비발디와 섬세하고 화려한 곡조가 인상적인 텔레만이 모두 당대의 음악가이며, 가장 클래식의 토대를 갖춘 시대이기도 하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접하는 클래식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섬세한가. 뭇 바다새와 갈매기, 럼에 취한 사내들의 중얼거림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바이올린 선율이란 얼마나 감동적인가. 여기에 그런 자가 있다. 바다의 소금기에 절은 채 죽음과 고통, 슬픔만을 알아온 남자의 앞에 선뜻 그런 부드러움을 전해줄 수 있는 신사가 있다. 이야기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섬세하기 때문에 강할 수 없으며, 상냥하기 때문에 어느 것 하나 분명하지 못했던 리벤지 호의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드라마의 시작은 영락없는 시트콤이다. 다양한 군상이 출연하고, 그 극에 중심을 이루는 선장이라는 인물은 한심하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데다, 그다지 호감이 가는 인물도 아니다. 드라마가 시작되고 얼마 되지 않아 다른 해적들과 같이 반역을 꿈꾸는 시청자도 적잖았을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 대부분은 이렇게 말하곤 한다. '사람이 나쁜 건 아닌데, 그냥 환경이 너무 안 맞는 거야'라고. 불행히도 그러했다. 적지 않은 영토를 지닌 귀족 스티드 보넷은 그런 인물이었다. 자신이 잘하고 싶은 것과 자신이 잘하는 것이 너무나 다른, 평범하게 불행한 인생이었다. 하필이면 그 격차가 극심했던 탓에 육지와 바다를 오가며 고통받는 모습을 보이는 것뿐이다.
그러던 그가 중대한 결정을 내렸다. 물론, 그 끝이야 허무맹랑한 것들 뿐이지만 그는 강한 결정을 내렸다. 평생에 할 수 있을지 알 수도 없는 중대한 결정을. 보통은 감내하고 참아낸다. 그 과정에서 나이가 들고 '중년'이 되어간다. 청년도 아닌 중장년의 길에서 망설이던 스티드 보넷은 그 어느 기사들도 감히 하지 못할 일을 해내고야 만다. 어쩌면 그건 재채기처럼 돌연적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룻밤 사이에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사라졌지만 어쩌면 그 바람이란 오래전부터 그의 마음속에서 불타오르는 화로와 같았을지도 모른다. 그 불을 끄기 위해 그는 기어코 중년의 위기를 벗 삼아 바다로 내달렸다. 그토록 오랜 기간, 아내와 아이들의 무관심 속에서 건조해낸 리벤지호를 타고 어중이떠중이 같은 사람들을 자신의 부하로 맞이하며 어찌 보자면 불행의 끝이 분명한 항해를 시작하고야 만 것이다.
하지만 원하는 것은 늘 그렇듯 서툴게 마련이다. 어째서 그렇게 늘 진심으로 대하는 것들에는 서툰 모습을 보이게 되는지 모르겠다. 스티드 보넷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그렇게 '요령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고, 그건 첫 화의 몇 분만 봐도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육지에서야 지겹도록 귀족의 삶을 겪어온 그이지만 바다에서의 모습은 하나하나가 새롭고 어렵고 난처하기 그지없다. 오래도록 품어온 꿈을 향한 첫걸음은 늘 그렇게 차갑고 냉혹하며 잔인하기 그지없다. 마음 만으로 이뤄낼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극단과 극단은 맞는다고 하던가. 이 어처구니없는 해적놀이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그야말로 당대 가장 유명한 해적인 검은 수염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 '이 머저리 같은 무리가 감히 검은 수염님의 관심을 친히 끌게 되었다'라고. 여기서부터 드라마는 결을 다르게 해 간다. 어처구니없는 시트콤과 같았던 드라마의 방향이 슬슬 퀴어 드라마의 느낌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누가 보면 마치 새로 나온 디즈니 영화라고 말할 수도 있을 만큼 극은 시트콤의 느낌을 유지하면서 계속해서 검은 수염(에드워드 티치 - 통칭 '에드')과 스티드를 부드럽게 부딪힌다. 거칠고 차갑고 짠내가 가득하던 바다의 면모가 이 둘의 사이에서 낭만적이고, 잔잔하게 부딪혀온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낯 뜨거운 사랑 이야기가 이 중년 사내들의 눈빛 속에서 아련하게 감도는 장면은 가히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벚꽃이 휘날리는 새 학기 봄날 자전거를 타고 가다 서로 부딪혀 눈빛을 나누는 치기 어린 청소년 시절로 돌아간 것 마냥... 그리고 여느 시트콤이 그러하듯 극 중에서 이 둘을 제외한 모두는 이 둘의 관계를 어림짐작하고 있다. 하지만 시트콤에 어디 이야기가 하나뿐이겠는가. 우리는 이 좌충우돌 해적들 속에서 짐을 향한 올루완데 의 짝사랑과, 블랙피터와 루시우스의 어른의 연애, 에드를 향한 이지의 이상할 정도의 집착 - 아마 이 시점에서 많은 시청자들이 에드와 이지의 사이를 오해하거나, 적어도 이지가 오래도록 에드를 짝사랑해 왔다고 느꼈을 것이다 - 하물며 프랜치의 미신이나 버튼스가 종종 즐기는 월광욕 등등 시트콤에서 각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듯 이 드라마에서도 개성 넘치는 선원들의 이야기를 감상할 수 있다.
사실 흥미로운 점은 바로 이 지점인데, 이런 시트콤과 같은 구조 때문에 결국 시청자들은 자신이 보길 원하는 커플링을 보기 위해 무던히도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이야기의 흐름 또한 큰 줄기가 있기보다는 매번 에피소드가 있는 형식이라 그토록 바라던 로맨틱한 순간이라 봐야 몇 분 남짓이지만 이 또한 감질맛을 선사하기에 충분하다. 이뿐이랴, 리벤지 호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서로 주고받는 시선, 건네는 말들까지도 하나 둘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하면 꽤나 오글거리는 사랑이야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이 드라마의 구조 자체는 중년의 위기를 겪어가며 고통받던 귀족 '스티드 보넷'이 전설적인 해적 '에드워드 티치'룰 만나고 서로에게 서로의 세상을 알려주는 이야기에 불과하다. 도리어 이 둘의 긴장감은 다름 아닌 부선장 이지 핸즈로 인해 발생하는데, 우려하던 이지를 안심시키기 위해 건네던 끔찍한 음모와는 반대로 계속해서 이 한심한 스티드와 어울리는 점을 무던히도 못마땅해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이 바보 같은 중년 연애담에 반발하는 탄력성 좋은 캐릭터란 이지 핸즈뿐이며 또한 그렇기에 에드를 향한 충성심이 가장 깊을 수밖에 없는 캐릭터도 이지 핸즈뿐이다. 중반부부터는 이지를 제외한 모든 선원(기껏해야 두 명뿐이었지만)들이 귀신같이 빠르게 리벤지호에 붙지 않았던가. 물론 그 점이 시사하는 것은 그만큼 검은 수염이 자신 휘하의 해적들을 막대했다는 점도 있겠지만 말이다. 또한 이지는 스티드의 스승과도 같은 느낌으로 비치는데, 이는 이지의 캐릭터성이 검은 수염과 스티드의 사이를 두고 보는 단계로 변화하면서 드러난다. 싸움의 세계를 알려준답시고 스티드를 꼬드겼지만 애초에 그게 가능할 리가 있겠는가. 천하의 검은 수염도 결국 사랑에 빠지고 나면 한없이 넋이 나간 바다사내일 뿐인 것이다. 그래서 그토록 스티드가 원했던 '해적으로의 길'은 검은 수염이 아닌 이지가 가르쳐준다. 하는 행동만 보면 마치 검은 수염의 어머니(그러니까 스티드의 입장에서는 시어머니...) 같아 보이는데, 이는 과장이 아니다. 자신이 섬기던 선장이 변해가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며, 자신(해적으로의 길)을 뿌리치고 기어코 스티드를 선택한 검은 수염을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 그 둘을 인정하고 스티드를 이끄는 모습은 영락없이 그런 느낌을 부추긴다.
한 편으로는 스티드가 검은 수염에게 소개하는 상류층에 대한 이야기는 느낌이 또한 다른데, 이는 검은 수염의 트라우마에 기반한다. 어둡고, 거칠고 사나운 남자의 뒷면에 숨죽여 울던 소년이 있었고 그 소년이 바라던 것은 늘 아름답고 찬란한 - 상류층의 생활이었던 것이다. 이 점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특히 이토록 검은 남자의 속에 이런 작고 아기자기한 소망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면 말이다. 어디 그뿐이랴, 스티드는 스스로의 취향이 타인에게 비웃음을 사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를 유일하게 인정해 주는 검은 수염은 그의 새틴 옷자락이나 고급 캐시미어를 보고도 환호할 뿐 비웃지는 않았다. 이 장면은 정작 '진정한 사랑은 상대의 이상한 점도 받아들여주는 것'이라는 말을 표현하기 위해 쓰였지만 조금만 더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가 보면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고급 비단이나 천에 대한 흥미를 느끼는 그 성미가 과연 스티드만의 전유물이었겠는가. 타고난 본성을 거스를 수 없듯이 그 성향은 검은 수염에게도 분명 존재했던 것이고, 결국 그 성미가 스티드를 만나 다시금 새롭게 피어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성미는 결정적으로 스티드가 그의 낡은 실크천을 칭찬하며 절정에 다다른다.
"가끔은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가치 있는 법."
초반부에 스티드보다도 더 스티드를 마음에 두었던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는 그때서야 '에드가 된다. 멋모르고 싸우는 법을 알려준다며 칼로 엉덩이를 때리는(...) 에드에 비해 스티드는 하나 둘 천천히 에드에게 상류층의 문화를 알려준다. 그리고 이렇게 둘의 매력은 균형을 이루어간다. 이때만 해도 괜찮았다. 이때만 해도 이들의 사랑과 함께 시트콤을 실은 리벤지호는 분명 순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는 전부가 아니었다. 결국 에드의 지지부진한 태도에 화가 난 이지는 직접 스티드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어처구니없이 결투에서 패배한 뒤 리벤지 호에서 버려진 채 음모를 꾸미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드라마는 태평하게도 그런 간지러운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총 10화 완결에서 8화까지 희희낙락한 이야기를 이어간다. 그러나 방심하지 말아야 할 것은, 에드와 스티드의 진정한 러브라인이 대두되는 것 또한 9화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때아닌 불청객 캘리코 잭과 그의 출현으로 더욱 분명해진 두 사람의 감정선은 에드가 스티드의 즉결 처형을 막아서고 그와 같이 왕의 해군이 되는 것으로 더욱 심화되는데, 해군 학교에서 에드가 그의 입술에 입 맞추는 씬은 이 드라마를 통틀어 가장 로맨틱하고 진중한 장면이다. 단순한 호감, 날아가는 감정선, 시선의 끝에 머물던 것들이 두 사람의 키스신에 머물면서 드라마의 정체성이 더욱 분명해진다. 문제라면 이런 것이다. 이 드라마의 시즌 1의 분량은 총 10화이고, 두 사람의 사랑이 피어나기 시작한 시점은 기껏해야 9화 정도라는 것이다. 남은 것은? 당연히도 다음 시즌을 약속하는 '갈등의 순간'뿐이다.
그래서 스티드는 불현듯 떠올린 가족을 다시금 찾아간다. 중국으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던 에드가 몇 번이나 스티드를 부르지만 그는 대답이 없다. 아마 9회 말에 스티드가 찾아간 것을 보고 밀크티를 내뿜은 그의 아내 모습이란 실로 그 드라마를 보던 시청자들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터다. 하지만 좀 더 스티드의 입장을 고려해 본다면 그리 정신 나간 스토리라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 에드와의 해군 생활, 해적 생활에 대한 염증, 잇따른 살인미수(...)로 인해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이라 인지했던 가정으로 다시 돌아간 것일 수도 있다. 1화 끝머리부터 그는 종종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마치 자기 자신에게 최면이라도 걸려는 것 마냥, '내 집은 여기야'라고 속삭여왔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스티드의 내적 갈등은 드라마에서 크게 다뤄지지 않는다. 때문에 시청자들은 더욱 그를 이해할 수 없고 억지스러운 전개라고 생각하게 된다. 드라마가 조명하는 것은 스티드보다 스티드의 부재로 인한 에드의 슬픔이다. 가정으로 돌아와 억지로 자신을 끼워 맞추려는 스티드의 이야기가 시트콤의 축을 담당한다면 스티드의 부재로 인해 철저하게 망가져가는 에드의 모습이야말로 드라마의 축을 담당하고 있다. 시청자들이 보아왔던 주된 이야기는 스티드의 가정 이야기가 아니며, 스티드 본인이 그토록 주지 시켰던 대로 그의 진정한 가족이었던 '해적'과 '에드'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에드가 나오는 씬은 사이사이마다 강렬하다. 스티드의 배신에 의아해하고, 그를 그리워하고 그를 열망하다가 기어코 그를 증오하는 단계까지 이어지며 에드가 절망의 끝에 닿는 것을 바라보며, 시청자들은 그가 얼마나 스티드를 아끼고 사랑했는지를 목격하게 된다.
그래서 스티드가 비로소 아내를 통해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에드'라는 것을 알게 되는 시점에 에드는 스티드를 놓기 위한 행동에 돌입한다. 스티드가 해왔던 행동, 스티드와 함께 해온 그의 식구들과 어울리며 스티드를 기억하고 추억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던 것이다. 부러 외딴섬에 해적 식구들을 그대로 남겨두고 떠난 이유는 그들의 얼굴이나 행동거지, 존재 하나하나가 스티드를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며, 그들을 죽이지 않은 것 또한 그들을 따로 미워하지 못할 만큼 정이 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캘리코 잭의 마지막 단말마는 맞는 말이었다. 해적에게는 친구가 없다. 스티드는 분명 그에게 있어 '친구로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었고 순간이나마 연인이었으며 이제는 그가 가장 잊고 넘어서야 할 산이 되어 있다. 그리고 뒤늦게 바다에 돌아온 그가 찾게 되는 것은 마치 떠나간 연인이 두고 간 커플 목도리라도 되는 것처럼 외딴섬에 늘어져 있는 그의 해적 식구들이다.
시즌1에서 중년의 위기란 1차적인 성장을 마친 셈이다. 일궈낸 가정에서 자리를 잃은 가장의 불안감, 따가운 사회의 시선은 이제 더 이상 스티드의 몫이 아니다. 그의 가슴 한편에 타오르던 책임감은 완전히 불식되었고 그 와중 자신이 놓치고 있던 에드를 찾기 위한 여정이 바로 시즌2의 이야기가 된다. 때문에 중년의 위기라는 좋은 키워드는 시즌2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되었다. 대신 그 안에는 두 사람의 사랑과 상실로 인해 에드가 보여주는 미칠듯한 스티드에 대한 애증이 넘쳐난다. 흥미로운 점이다. 이 드라마 아닌 여느 드라마라도 누군가를 열망하는 감정이란 그 사람의 부재로 인해 가장 강렬하게 보인다. 소수정예로 간추려지고 몇몇은 더해진 리벤지 호의 선원들이 그토록 검게 그을린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바로크 음악과 어우러져 순항하던 리벤지 호의 모습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이지 핸즈가 그 이름만 발음해도 다리 한쪽을 잃을 만큼,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는 스티드에 대한 집착을 오롯이 자신의 마음에만 가둬둔 채 자신의 해적들을 혹사시키기만 바쁘다. 스티드와 그 식구들의 우여곡절도 나오지만 사실 그 부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오히려 그 이야기를 가장 궁금해할 남자는 당장에 리벤지 호에서 상대의 목숨을 끊는 데에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역대 최대의 해적이 발휘한 깊고도 진한 인내와 역대 최악의 귀족이 뒤늦게 깨달은 사랑 덕분에 결국 두 사람은 만난다. 자신의 아버지 죽음을 크라켄이라고 둘러댄 해적답게, 검은 수염 에드워드 티치의 꿈에서 스티드는 물속의 인어가 된다. (이 시점에서 에드는 인어를 'mermaid'라고 부르는데, 사실 인어도 여성형 명사[mermaid]와 남성형 명사[merman]가 있다. 이 점을 몰랐을 것이 분명 하나 지속적으로 스티드를 여성형 명사의 인어라 칭하는 점은 매우 흥미롭다.) 마치 스티드라는 이름의 인어에게 한동안 홀렸던 자신을 책망하듯 검은 수염은 스티드를 냉대하려 하지만 스티드는 전과 같지 않다. 그는 중년의 위기를 불식시킨 남자이며, 그만을 찾아 다시금 바다를 찾은, '목적이 있는' 남자였다. 그래서 에드워드 티치를 다시금 '에드'로 만들 수 있는 자도 그 남자뿐이었다. 실제로 티격 대긴 했지만 원래의 식구들을 다시 찾은 리벤지 호는 다시 예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다. 심지어 스티드는 에드로 하여금 식구들에게 사과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다.
남은 것은 이 둘을 다시금 괴롭히는 시트콤의 연속이었지만 마지막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드는 이유는 그들이 더 이상 떠돌지 않고 '정착'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지 핸즈의 죽음은 곧 이들의 해적 생활이 종료되는 것을 뜻하며, 그의 묘를 통해 그들이 그 땅에 정착하리라는 것을 보여준다. 바다에 뜬 배는 어디로든 갈 수 있으나 이는 곧 방황과 정처 없이 떠도는 삶을 의미한다. 중년의 위기에서 허우적대던 두 남자는 드디어 정착할 서로를 찾았다. 그것이 가정에서 오는 압박감이든, 지지부진한 해적질에서 오는 지루함이든 간에 말이다. 두 사람이 육체적으로 맺어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로맨스의 연장선에 불과하다. 사랑은 육체적인 관계에서 종료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사랑의 부분일 뿐이며, 주요한 것은 그 사랑을 머물게 하는 힘이다. 그것은 무척 덧없는 것에서도 뿜어져 나온다. 함께 지내는 것, 밥을 먹는 것, 오래도록 티격대면서도 서로의 곁을 지키는 것. 흔히들 우리가 가정이라 부르는 것에서 오는 아늑한 것들에서 시작한다. 사랑이라는 것은 관계를 삼키고도 남을 만큼 무척 깊고, 넓다. 그래서 이 드라마가 가져야 할 엔딩이란 이런 것이었을 터다. 스티드 보넷이라는 한 남자의 중년의 위기에서 시작해서 에드워드 티치라는 남자의 중년의 위기와 충돌하여 망망대해의 바다를 뒤로 하고 낡은 집에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꾸려나가는, 성장하고 정착하는 삶 말이다. 결국 모든 배들은 항해를 시작하지만 그 항해가 끝나는 지점은 이내 그들의 정착지이자 목적지가 될 테니까. 그들이 내린 닻은 이제 더욱 견고하고 든든하게 매여서 밀려오는 파도도, 쓸려가는 물들도 모두 무던히 흘려보낼 수 있을 것이다. 때로는 물 위의 해적들의 노래처럼, 때로는 텔레만의 협주곡처럼. 우리 모두는 위기 속에서 떠도는 배들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 위기의 끝에 목적지가 있을 것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받아들여주고 사랑해 주며 무엇보다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목적지가. 우리 모두의 배가 순항하고 끝내 그 목적지를 찾아 정착하기를 바라며. 이 드라마의 감상문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