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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May 20. 2021

"열심히 하라"는 말의 공허함

실제로 나를 이끄는 것

어쩔 때는, "열심히 하라"는 충고만큼, 공허한 게 없다고 느낀다. 내가 요즘 가장 공을 들이는 것은 두 가지다. 매일 적은 분량이나마 글을 써내는 것, 아이를 좋은 에너지로 잘 돌보는 것. 여기에는 역시 어려움이 있다.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전혀 알지 못하는 영역이 있다고 느낀다. 유명한 작가들이 하는 말도, 모두 다른 기준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그래서 나만의 뾰족한 기준은 내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매일매일의 글쓰기는 쉽지 않다. 이런 이야기를 주변 사람들에게 잘 하지는 않는다. 한다고 하면, 남편 정도이다. 글이 잘 안 써져서 우울해, 라든가, 오늘은 글을 너무 많이 써서 이상해, 좀 쉬어야 할 거 같아, 라는 이야기다. 엊그제는 글이 너무 빨리 써져서 스스로가 기계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어제는 마음이 텅 빈 것처럼, 아무리 속 깊이 내려가도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오 년 전이었다고 하면 이런 스스로가 나를 끊임없이 우울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제는 사람은 각자의 리듬이 있나 봐. 내 뇌가 과열됐는지 스스로에게 쉬라는 신호를 주는 건가 봐 말하고는, 그냥 쉬었다. 뭐라도 붙잡고 글의 소재로 만들었을 시간에 그냥 잠을 자고 멍하니 있다가 아기를 재우고 다시 멍을 때리는 식으로 하루를 보냈다.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거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대답할 정도였다. 그런 하루가 지났다. 오늘까지도 약간 정신이 없었는데, 그래도 아침에는 뇌에 산소가 들어오는 느낌이 들었다.


오후에는 아이와 마주 보며 웃다가 밖에 잠깐 나왔다. 아주 얇은 빗줄기가 힘 없이 바람에 흩날리는 날씨라 우산을 쓰지 않는 것만으로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스스로가 아주 기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오늘의 마음은 이십 대 초중반에 꼭 얻고 싶은 것이었다. 생각해 보면 그때는 나를 정말 많이 다그쳤던 것 같다.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열심히 하자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것쯤이야 누구나 아는 성공의 기술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말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무언가를 꾸준히 해나가는 데 있어서 말 한마디가 내게 영향을 준 적은 딱히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군가의 조언에 머리를 띵 맞은 것처럼 이제 잘할 수 있겠다 싶었던 적은 있었지만, 실제로 그다음에 내 행동을 이끌었던 것은, 그래서 결과와 성취가 되었던 것은 스스로 올바르다고 느꼈던 방향이나 감각, 반성하며 썼던 오답노트, 어느 밤에 갑자기 쏟았던 눈물, 그런 것들이 내 삶의 방향키가 되어주었다.


열심히 하라는 말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조차 말일 뿐이지만, 나를 행동하게 하는 것은, 말이 아니지 않을까 싶다. 그것은 차라리 말로 표현되지 않는 어떤 초월적인 감각에 가깝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열심히 하라는 충고가 공허하다고 느끼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어떤 말도, 표현하기 전에는 아무렇게나 흐트러져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글을 쓰는  필요한 것이란, 언어로 만들기  이전의 감각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것이 삶을 누비며 살아가는 태도  자체라고 생각하곤 한다. 가령, 사랑에 대한 에세이를 출간한 사람이    분량의 글을   있었던 이유는 평소에 사랑에 대해 그만큼 많이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떤 순간에 우리는   마디의 힘을 믿고 나아가야   같기도 하다. 그러나 나에게 주어진 터널은 생각보다 길다는 생각을 했다.  터널을  건너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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