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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리맘 May 27. 2021

서로의 숨소리를 베개처럼 베고

요즘에는 남편과 아이와 저녁을 먹는 시간이 제일 좋다. 하루 종일 떨어져 있던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오면 무엇을 먹을지 이야기하고, 번갈아가며 음식을 말하다가 번뜩이는 하나가 우리에게 생각날 때, 그렇게 고른 음식을 마주 앉아 먹는 시간이 좋다. 아이는 이유식 의자에 앉아 멀뚱하게 우리가 밥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저렇게 순한 아기가 어디에 있겠냐고 이야기하면서 남편과 나는 밥 한 숟갈, 아기 얼굴 한 번, 서로의 얼굴 한 번을 번갈아 쳐다보며 밥을 먹는다.


아이는 신기하게도 울지 않는다. 오늘은 아이가 그 동그란 턱살을 이유식 의자에 달려 있는 책상에 공처럼 얹어 둔 채 눈은 똥그랗게 뜨고 조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우리를 보고 있었다. 남편이 없을 때는 아이의 표정에 예민해지고 쟤가 왜 저러나, 왜 무표정을 하고 있나 싶을 때가 있는데, 남편이 회사에서 돌아오고 우리 식구가 셋이 되면 우리를 둘러싼 아주 안전하고 안락한 막이 하나 생긴다. 어떤 절대적인 힘이 우리를 지켜준다고 느낀다. 그 힘 안에 있을 때 나는 웃지 않는 아이를 먼저 웃길 수 있다. 팔을 들어서 원숭이처럼 흔들기도 하고, 별 의미 없고 실없는 소리를 말투만 웃기게 해서 아이에게 쏟아낸다. 그러면 아이는 웃는다.


남편이 쉽게 아이를 웃기는 것에 비해서, 나는 힘을 많이 들여야 아이를 웃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보는 남편은, 늘 내가 곁에 있는 남편의 모습이라는 생각을 했다. 기본적으로 나보다 남편이 더 단순한 성격이기도 하고, 아이와 함께 매트에 굴러다니는 모습을 보면 저건 정말 아이와 놀아주는 게 아니라 같이 노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지만, 나를 만나기 전의 남편의 모습을 생각하면, 왠지 카라 깃이 이상하게 세워져 있을 것 같고, 빨아야 하는 바지를 그냥 입은 상태일 것 같고, 운동화에 김치 국물 하나쯤 떨어져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어설픈 남편이 내 삶에 들어왔다.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가 되어 세상에서 제일 작은 존재를 지키고 있다. 그곳에서 내 남편은 완벽하기 그지없다는 생각이 든다. 시터 이모가 퇴근한 후 아이를 의자에 앉히고, 남편과 먹고 싶은 음식 하나씩 골라, 창문 너머로 해가 곧 떨어져 갈 것을 기대하는 시간이 좋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 나면 밤의 시간이 온다. 모든 게 멈추고 시간과 공간만 남은 곳에서도, 아기가 새근새근 자는 소리를 들으면, 무언가가 절대로 죽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시간 속에서, 남편을 더 완벽하게 만드는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면, 이제 서로가 없는 서로의 모습을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내가 불완전해지는 게 아니라, 이상하게 완전히 완벽해지는 느낌이 든다. 어느새 당신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사실 같은 것에 기대어 살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 세 식구가 하나의 원 속에 오롯이 갇힌 채 서로의 숨소리만을 베개처럼 베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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