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함께 한 회식
교도관의 직업 특성 상 지역을 옮겨다니는 일이 많다 보니 상당수가 외지인이어서 동료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미혼자들도 많은 편이고, 기혼자여도 주말부부로 지내는 분들이 많아 동료, 선후배와 함께 술 한 잔 기울이는 시간이 꽤 많은 것 같았다. 지금 인턴으로 출근하고 있는 우리 과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술자리를 가진다. 딱히 정해둔 건 아니지만 과장님도 자유로운 분위기를 지향하시는 편이고, 워낙 같이 일하는 동료들 간에 사이가 좋아 달에 한 번은 함께 이야기 하면서 회포를 푸는 시간이 있는 듯했다.
통영에서 거제로 퇴근해야 하는 우리는 알아서 집에 가려면 택시비가 꽤 들었기에, 각자의 회식에 서로가 회식이 끝날 때까지 서로를 기다렸다가 태워갔다. 더군다나 우리 과에는 같은 지역으로 퇴근하는 분들이 더 있어서 종종 함께 가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알고 계셨던 과장님은 "이번에는 Y계장도 괜찮으면 같이 와요"라고 하셨다. 평소에 남편과 접점이 없어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던 분들도 이전부터 남편도 함께 자리해도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었는데, (계속 인사치레로 생각해서 넘겼었지만) 이번에야 남편도 같이 인사도 할 겸 자리에 함께 하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 회식이라니, 같은 곳에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욱 실감났다.
통영에서의 술자리 문화 중 특이한 점은 '통영 다찌'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통영의 다찌란, 술을 주문하는 대로 주인이 그날 그날 준비한 안주를 내어오는 방식인데, 요즘엔 '이모카세'로 불리는 그것과 비슷하다. 평균적으로 인당 2만원 선을 내면 통영의 싱싱한 해산물과 주인이 그때마다 내어오는 안주를 즐길 수 있는데, 여태껏 갔던 다찌들은 이곳에서 오래 계신 분들의 추천을 따라서인지 모두 만족스러웠다. 오징어 숙회, 활어회, 멍게/굴 등 해산물 모듬, 수육, 각종 전, 해물탕, 생선 요리, 장어, 제철과일 등 여러 안주들을 한번에 즐길 수 있어 술꾼이라면 정신 차리지 못할 조합으로 손님을 반긴다. 물론 술을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안주는 더 나온다. 다찌에서의 술자리를 하고 나면 우리가 정말 바다 근처에 살고 있다는 게 더 느껴졌다.
남편은 이곳에서 근무한 지 1년이 넘었다. 지금 하고 있는 업무 특성 상 내가 있는 과와는 크게 관련이 없어서 우리 과 사람들과의 교류도 거의 없었다고 했다. 인턴인 나를 항상 편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하기도 하고, 언젠가는 한번 얘기해보고 싶었던 선배들이라며 남편은 나와 술자리로 향했다. 이번에는 특별히 내가 운전을 하기 위해 남편에게 술잔을 넘기기로 했다. 남편이 선배들과 처음 가지는 술자리이기도 하고, 그가 업무 상으로도 언젠가는 만날 수 있는 분들이기에 그가 술잔을 드는 편이 더 맞을 테니까.
다행히 과장님과 선배들은 남편을 반갑게 맞이해주셨다. 이렇게가 아니면 언제 터놓고 대화 해보겠냐며 편안하게 대화를 이끌어주신 덕분에 남편도 한 잔씩 나누면서 찬찬히 대화를 해갔다. 한 선배는 업무 차 나가서 남편을 만났을 때 아는 척 하고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일 때문에 이야기를 못했다며 드디어 만나게 되어 반갑다고 하셨다. 같은 지역에 사는 선배는 종종 외지인인 우리 부부에게 도움이 될 만한 지역의 꿀팁들을 알려주곤 하시는데, 덕분에 도움 받은 일들이 꽤 많았다. 남편이 새로 일을 맡고 나서 어떤지 종종 물어봤던 선배는 새 일을 맡았을 때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을지 잘 알고 있다며, 공무원에게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일이 얼마나 부담되는 일인지도 공감해주곤 했다. 덕분에 남편도 마음이 많이 풀렸는지 오랜만에 신 나게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과 회식은 농담이 늘 함께 하는 분위기다 보니 늘 유쾌한 편이다. 건배사를 할 때에도 모두가 '이런 과 분위기는 정말 찾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지금의 관계가 유지될 수 있는 데에 감사한다는 말을 늘 덧붙였다. 남편 역시 늘 내게 '그런 과장님과 그런 동료들 없다'며 정말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일을 할 때 중요한 건 역시 사람들과의 합이라는 것을. 이전에 일할 때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코드가 잘 맞으니 일도 잘 풀렸는데,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소통 자체가 힘이 들어 매번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일했었다. 일이 잘 풀린다 하더라도 안 맞는 사람들, 특히나 나에게 호의적이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는 뒤에서 들리는 말들을 모른 척하며 앞에 쌓인 일들을 쳐내야 했다. 때문에 늘 화로 가득했다. 그 화가 나를 남편을 따라 이곳으로 오게 한 결정적인 이유가 아니었을까, 문득 생각했다.
늘 경쟁하며 다른 사람 혹은 경쟁사와 비교하며 살아가는 건 나를 채찍질해서 업무적인 능력을 향상시킬 순 있어도 내 정신은 피폐해져갔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들려오는 여러 말들도, 신경써야 하는 파벌들도 늘 나를 옭아맸다. 지금이야 인턴으로 일하고 있으니 업무적인 로드가 훨씬 덜 해서, 혹은 남편과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더 마음이 편한 것일 수 있겠지만 지난 내 회사생활을 돌아보니 중요한 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었다는 것.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본격적인 회사 생활이라 할 순 없지만, 다시 일을 하게 된다면 내게 필요한 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남편까지 함께 잘 맞이해주신 덕분에 기분 좋게 참여할 수 있었던 술자리. 어쩌다 보니 남편의 회사에 잠시나마 출근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도 함께 참여하는 자리가 생겼던 어느 날. 이 모든 게 우리가 거제에서 같이 지내기로 했으니 가능한 일일 테다. 어쩌면 인생에서 다신 없을, 부부가 함께 한 곳으로 출근하는 날들 중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갔다. 새로운 인연들을 남긴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