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거 안 해도 재미난 둘의 기념일
우리 부부에게는 연애 때부터 서로에게 서로가 인연이라 생각할 만한 한 가지 특별한 점이 있었다. 바로 생일이 같다는 것. 만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서로의 생일을 물어보았을 때였다.
"나는 92년에 태어나서 9월 2일!"
"어? 나도 9월 2일인데"
"응? 진짜 그럴 수가 있어? 거짓말 하지 마!"
"진짜야! 내 전화번호에도 생년월일 들어가 있잖아!"
그의 전화번호를 다시 한 번 확인한 나는 정말 놀랐다. 그의 생일이 정말 나랑 같았기 때문이다. 나랑 생일이 같은 사람을 주변에서 딱 2명 봤었다. 중학교 때 반 친구 한 명과, 함께 한 회사에서 인턴을 했던 언니 한 명. 그때도 참 신기하다고 생각했었다. 엄연히 따지자면 365분의 1의 확률이라 그렇게 특별할 일도 아닌데. 근데 나랑 만나고 있는 사람이, 내 애인이 나랑 생일이 같다는 건 정말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만들었다.
인연이라 생각하기에 더 좋은 빌미였다. 연애했던 7년 중 6번의 생일을 '공동탄신일'로 여기며 함께 생일을 축하했다. 그는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며 늘 나를 먼저 챙겨주곤 했었다. (언제나 그랬었지만) 내가 먹고 싶은 음식, 가고 싶은 곳을 함께 갔었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들을 선물해주었다. 우리의 생일에 하필 그의 야간 근무가 걸리지 않도록 매번 마음을 졸이며 기도했던 때도 있었다. 그런 때면 근무를 변경해서라도 같이 있어주려 하던 그의 노력이 많이 고마웠다.
작년 우리의 생일에는, 그러니까 9월 2일에는 기념일 하나가 더 추가되었다. 우리는 그 날 결혼하기로 했었다. 우리의 생일날에 결혼기념일까지 얹어서 이 날을 더 특별하게 만들었다. 작년에 청첩장을 돌릴 때마다 친구들은 "기념일 하나를 없애면 어떡해! 기념할 날을 더 만들어야지!"라고 말했었는데, 우리는 "그럼 그날이 더 특별해지고 좋지 뭐! 선물도 서로 퉁 치고 같이 보내는 것으로 기념하지 뭐!"라고 답했었다. 그 날을 어떻게 같이 보낼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설렐 테니까. 내가 그에게, 그가 나에게 원하는 건 오래도록 같이 있는 것이므로.
어제는 결혼하고 처음 맞이하는 첫 번째 결혼기념일이자 우리의 생일이었다. 작년에는 생일날 결혼을 하니 정말 정신 없이 보내기에 바빴었고, 올해에는 매일 같이 출근하고 같이 퇴근하면서 쭉 붙어 있다 보니 특별하게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다. 그래도 기념일은 기념일이니까, 1년에 한 번 밖에 없는 오늘을 그냥 보내기엔 아쉬우니까 하면서 우리는 뭘 할까 고민했다.
운때가 참 잘 맞게도, 회사와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통영의 바다가 보이는 어느 호텔의 숙박권을 우리의 생일에 맞추어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돈을 들이지 않고 외박을 할 수 있다는 사실보다, 어쩜 이렇게 때가 잘 맞았나 하는 쾌감 때문에 기분이 더 좋았다. 기분 전환 겸 바다 가까이에 있는 숙소에서 하루 저녁을 보낼 수 있다니! 퇴근 후인데 여행을 온 것처럼 지낼 수 있게 되었다.
남편과 함께 퇴근 하자마자 숙소로 가서 체크인 하고 난 뒤, 숙소를 찬찬히 둘러봤다. 바다가 훤하게 보이는 숙소는 바다가 보이는 방향으로 소파를 돌려 두고 술잔을 기울이기 딱 좋았다. 둘의 생일 상으로는 이전에도 맛있게 먹었던 가성비 좋은 횟집의 회 세트와 초밥을 선택했다. 집에서부터 챙겨온 샴페인과 어울릴 식사이니까. 그리고 점심 시간을 이용해 평소 먹고 싶었던 케이크도 두 조각을 사 두었다. 그래도 기념일이 몇 개나 겹친 날인데 초는 불어야지 하면서.
둘만의 파티는 그렇게 펼쳐졌다. 뭐 사실 집에서 지내는 것과 별 다를 건 없었다. 함께 보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술잔을 부딪히고, 회 한 점 먹고 바다 한 번 보고. 그러다 다 먹고 나서는 케이크에 초를 꽂아 불고. 서로에게 "생일 축하해!"하고 말해주고는 서로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뒤이어서, "나랑 결혼해줘서 고마워!"라고 서로에게 말했다. 그 한 마디면 평범한 일상이 기념일로 바뀔 테니까.
애석하게도 그 애틋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야심차게 샴페인에 소주까지 들고 왔었지만 하필이면 생일 날 낮부터 감기 증상이 오던 나는 저녁이 되자 재채기가 더 심해지더니, 콧물이 쏟아져서 멍해졌다. 오래 앉아있지 못하고 이내 누워버린 나는 남편에게 "미안해, 이런 날 아파서"라고 말해야했다. 남편은 아픈 게 뭐가 미안할 일이냐며 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지내는 것이 자신이 원하는 요즘의 소원이라고 말했다. 결혼한 지 이제 1년인데 여러 일들을 함께 겪은 내가 몸도 마음도 지쳐있을 까봐 매번 걱정하는 남편을 봐서라도 컨디션을 얼른 회복하고 싶었다. 뭐 어찌되었든, 늘 내가 우선인 그가 내 사람이어서 정말 감사하다고 한 번 더 생각하면서 잠에 들었던 것 같다. 냉장고에 넣어둔 술과 안주를 뒤로 한 채.
어릴 때는, 그러니까 내 내면이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생일이 정말 특별한 날이었으면 하고 바랐던 것 같다. 혹시나 친한 친구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으면 괜히 심통이 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함께 축하하고 함께 기념할 사람이 있는 지금은, 생일이라고 해서 무언가 특별할 필요가 없다고, 선물 받고 싶은 게 뭐냐는 질문에도 딱히 갖고 싶은 것도 없어진 때가 되었다. 어쩌면 나를 가득 채워준 남편의 사랑 덕분이 아닐까. 늘 머금고 있는 사랑이 부족한 것 없는 마음으로 만들어 준 것이 아니었을까. 나와 함께 사는 사람이 나에게 가져다 준 변화가 또 한 번 실감났다.
언젠가는 서로에게 무언가를 바라게 되는 기념일이 될지 모르겠지만, 서로에게 "같이 있어줘서 고마워"라는 말 한 마디로 늘 감사할 수 있는 부부로 오래도록 남고 싶다. 두 사람의 생일과 결혼기념일이 같은 어느 부부의 기념일은, 그다지 특별할 것 없지만 서로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더 깨닫는 날로 내년에도, 이후에도 맞이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