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따라 어디던 함께 하겠다는 마음
어쩌다 보니 세상 처음 보는 직업을 가진 그를 만났고, 7년 여 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교도관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을 처음 봤던 나는 호기심 반 관심 반으로 그를 보았다. 연애 초반인데도 드문드문 연락이 되던 그에게 섭섭함을 느끼기도 했는데, 교도관들은 보안 규정 상 휴대전화를 지참하는 게 아닌 보관함에 넣어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더랬다. 요즘 세상에 휴대전화를 반납하고 일해야 하는 곳이 있다고? 싶었지만 그는 교도관이니 모든 것이 이해가 되었다. 그건 내가 모르는 세계니까.
그와 연애 할 때, 그가 교대 근무를 들어갈 때면 연락할 수 있는 시간조차 그의 근무표에 맞추어야 했다. 어떤 날은 그가 퇴근하는 아침에 내가 출근하고, 내가 퇴근 할 때 그는 잠에서 깨어나는 같은 하늘 아래의 시차를 경험하기도 했다. 또 어떤 때는 공휴일에 쉬는 나와 달리 근무에 들어가는 그의 스케줄로 인해 연휴임에도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야 하는 때들도 많았다. 교대 근무자와 연애를 하는 건 참으로 고려할 부분이 많다는 것을 느꼈던 연애 기간이었다. 그는 물론 교대근무를 나가야 그나마 월급이 쓸 만하다고 교대 근무를 더 좋아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의 직장(=교도소)은 지도에 검색해도 검색도 되지 않는다. 안양교도소를 예로 들어보면, 안양교도소라고 어느 지도 어플에 검색해도 검색이 되지 않는다. 나오는 건 버스정류장 이름에 해당 교도소나 구치소 이름이 들어가 있거나, 도로 이름 정도만 나온다. 이것 역시 보안 떄문이라고 한다. 애인의 직장 위치도 정확하게 알 수 없다니, 처음에는 의심이 그득했지만 이것 역시 그의 직업은 내가 모르던 세계였으니 신기하기만 했다. 남자친구의 직장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귀여운 이벤트도 할 수 없던 것은 물론이고, 그렇게 했다가는 출소하는 수용자들과 마주칠 수 있다며 극도로 말리던 그였기에 그의 직장에 찾아가는 일은 일절 할 수 없었다.
연애때는 비교적 단순했던 그의 직업적 특성으로 인한 고충들이 결혼을 생각하고 나니 그의 발령지가 바뀌는 것에까지 뻗어갔다. 그가 더 높은 직급이 되면서 지방으로 발령이 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에게도 주말 부부를 할 것인가, 내가 같이 그를 따라 갈 것인가를 계속 고민하게 되었다. 유독 수도권과 가까운 지역의 인원이 적었던 이번 발령에서, 그의 발령지는 통영으로 결정이 되었다. 기차도 다니지 않는 통영이라니, 서울까지 한번 오면 편도 5시간은 생각해야 하는 곳이라니! 내가 같이 가지 않으면 최소 2년은 주말 부부는 커녕 월간 부부가 될 게 뻔했다.
그토록 원하던 그와의 삶이었는데, 이렇게 떨어져 살 수는 없겠다 생각했다. 나는 그가 어디로 가던 따라가겠다고 했다. 잠시 내가 일을 쉬게 되더라도, 그와 함께 지내는 이 시간이 장기적으로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일이야 어떻게든 내가 찾으면 그곳에서도 찾아지겠지, 하고서. 그와 함께 연고도 없던 거제에 그렇게 함께 살기로 했다. 통영이 아닌 거제가 우리의 거주지가 된 이유는 이런 뷰를 누릴 수 있는 집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리 잡은 우리의 거제 집에서는 방마다 바다를 볼 수 있는 집이다. 해가 뜨는 바다를 볼 수 있고, 적당하게 차가 다니는 도로도 함께 볼 수 있고, 조금만 걸어 나가면 맑은 바닷물이 있는 해수욕장이 있는 곳. 잠깐 내 경력이 단절되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나는 지쳐 있었고, 이 바닷가에서 그와 나만의 시간을 조금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교도관의 아내가 된다는 건 이렇게 그의 발에 맞추어서 살아도 괜찮다는 마음을 가져야만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본다. 어디던 그를 따라가도 좋다는 사랑이 함께 해야만 하는. 그렇게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살아온 두 사람이 평생에 한 번 찾아오기도 힘들, 바다가 보이는 거제 집에서의 신혼을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