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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Jan 23. 2024

두 엄마가 아플 때

당장이 아닌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것

- 나의 엄마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쯤, 우리 엄마의 심장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게됐다. 학교 과학 시간에 심장의 구조에 대해 배울 때 '판막'이 뭔지 막 배울 때였는데, 엄마의 심장 판막이 기능을 못 한다는 말을 듣고 이건 무슨 병인가 찾아보던 게 기억이 난다. 당시에는 어리기도 했거니와, 지금처럼 정보를 찾기만 해도 우수수 나오던 때가 아니어서 엄마가 언젠가는 심장 수술을 받게 될 거라는 것만 얼핏 알고 있던 터였다. 


엄마의 심장은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했다. 의사인 엄마도 자신의 몸은 어쩔 수가 없었다. 판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니 늘 몸이 부었고, 와파린을 복용하다 보니 약을 조절하는 동안 혈전이 생기기도 했으며, 폐에 물이 차 숨 쉬기가 어려운 때도 있었다. 엄마의 건강 상태는 늘 우리 집안의 걱정이었다. 외할머니는 늘 당신의 잘못으로 어릴 때 생긴 병을 못 고쳐 그런 거라고, 엄마의 건강을 기도하시는 게 일과 중 하나였다. 내게도 늘 엄마 걱정 시키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는 게 할머니의 유일한 바람이었다. 


엄마는 내게 늘 말했다. 나중에 혹시 너가 아기를 낳더라도 봐 줄 수 없어 미안하다고. 계속 일을 할 생각이라면 아이를 가끔이라도 봐줄 수 있는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고. 아니라면 엄마인 나 혼자서 감당해야 할 거라고. 그래서 엄마가 바라는 사위상 중 가장 큰 건 이거였다. 시부모님이 모두 건강한 분들일 것. 비단 아이 뿐만이 아니라 양가 모두 환자가 있으면 너와 네 남편 모두 불행할 거라고. 어릴 때부터 그렇게 엄마의 소원을 들어왔건만, 나는 엄마의 그 원을 들어주는 딸이 못 되었다. 


- 그의 엄마

내가 남편을 만나고 1년 반 가량 되었을 때, 당시 남자친구였던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어머니가 쓰러지셨다고. 나는 당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제대로 이해 못했다. 그래서 정신이 뭐야, 혼까지 나가 있을 그와 연락이 잘 되지 않아 걱정이 된다며 오히려 그에게 짐을 얹어주기만 했다. 걱정 되니까 연락 달라고.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은 행동들을, 당시 그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던 나는 그에게 저질렀다.


어머님의 뇌에는 어머님도, 가족들도 몰랐던 시한폭탄이 있었다고 한다. 그게 이제야 터진 거라고 했다. 그나마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쓰러지셔서 병원으로 바로 갈 수 있던 게 불행 중 다행이라 했다. 그런 불행은 일어나지 않는 게 가장 좋았는데, 불행 중 다행이란 말을 남편은 쥐어 뜯고 싶었을 테다. 그날 이전에 어머님을 뵈러 갔어야 했다는 후회뿐이었다. 어머님과의 대화는 그날 이후로 할 수가 없게 되었으니. 


어머님은 오래도록 같은 자리에 누워계셨고, 남편은 그래서인지 결혼을 생각하기 버거웠다.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나는 부모님께 그의 상황을 말씀 드리고 부모님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 가지고 마는 딸을 둔 엄마는 반대 끝에 당신의 소원이 아닌 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하셨다. 그렇게 어렵게 하게 된 결혼이니 더 양껏 이 함께라는 행복을 누리겠노라고, 매일 서로를 향해 웃어주며 살아가고 있다.


- 엄마가 된다는 것

두 엄마가 아프시니 우리에겐 아이가 생기고 나면 온전히 우리 둘의 힘으로 길러야 한다는 현실이 다가왔다. 부모님께 맡기는 것이 아니더라도, 아이가 어릴 때는 내 손으로 내가 직접 곁에 있고 싶다는 생각을 줄곧 해왔던 내게는 그 현실 자체는 크게 버거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의 일과 양육을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을 뿐. 육아휴직이 암만 있다 하더라도 그 휴직으로만 아이를 기르기엔 부족하다는 건 잘 알고 있고, 육아와 업무를 다 잘 해내고 싶다는 욕심으로 스스로 힘들어하게 될 나의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그래서 당장이 아닌, 미래를 내다보며 나의 일을 내려놓기로 했다. 육아와 일, 두 가지를 병행하며 잘 살아내는 엄마들도 많겠지만 그렇게 정신 없이 살아가며 몸과 마음을 온전하게 유지해낼 자신이 없었다. 나무가 아닌 숲을 보기로 했다. 내가 잘하는 것을 하면서 아이를 기를 수 있는 방법이 어떻게든 있겠지, 하면서. 엄마로서도, 쓰는 사람으로서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어떻게든 찾아낼 것이다. 두 엄마가 아픈 걸 각자 겪어내면서 우리가 느낀 건, '함께 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 지금 있는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 가족이 행복한 건 결국 같이 있는 시간과 대화라는 것을 느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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