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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Jan 05. 2024

교도관 남편과 작가 아내의 첫 만남

내 전화번호는 왜 안 물어봐요?

출판 업계에 있던 내 직업 세계에서는 교도관이라는 직업을 생각해보지도, 주변에서 듣지도 못했다. 그래서 그를 처음 만났던 한 모임에서 그가 자신의 직업을 '교정 쪽'이라고 말했을 때, 나는 당연히 그의 직업이 출판 업계에서 말하는 '교정/교열'이라고 생각했더랬다. 나는 '출판 업계'라고 말했고, 글을 쓰기도 한다고 나를 소개했다. 대뜸 처음부터 '시인'이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에 대한 기대가 엄청나지므로.


그가 나와 같은 업계라고 생각했고, 책을 좋아하는 듯한 그와는 말이 꽤 잘 통했다. 어쩌다 보니 그 모임에서 자리를 옮겨다닐 때마다 그는 내 옆에 있었다. 거의 동이 틀 때까지 계속되었던 그 술자리의 마지막 행선지인 노래방에서까지 그는 내 옆자리에 계속 있었다. 추워하는 내게 그의 겉옷이 덮어져 있었던 건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신촌 어드메에서 드디어 술자리가 끝이 났고, 연남동 부근이 집이었던 나는 집에 걸어가면 되니 인사를 나누고 가려는데 그가 대뜸 집을 데려다준다는 게 아닌가. 이건 무슨 신호인가? 하고 생각하며 15분 남짓한 거리를 걸어갔다. 걸어가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집에 도착해갔고, 이 쯤이면 그가 '당연히' 전화번호를 물어볼 줄 알았던 나는 잘 들어가라고 말하고 홀연히 떠나려는 그에게 의아하다는 듯이 물어봤다.


"전화번호는 왜 안 물어봐요?"라고.

근데 그의 대답에 나는 더 벙찌고 말았다.

"제가 물어봐야 하는 거에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당시 스물 여섯의 나는 당연히 이런 수순이라면 번호를 물어보겠지, 그렇다면 그다지 내 스타일은 아니지만 번호는 줘 보겠노라 했던 혼자만의 생각이 아주 부끄러워질 만큼 그는 의아한 듯이 물어보았다.


"그럼 핸드폰 한 번 줘봐요." 하고 나는 그에게 번호를 주었다. 그 후 그는 카카오톡도 아닌 문자로 연락이 왔고, 우리는 일주일 뒤에 다시 연남동에서 만났다. 그와 연락하는 일주일 동안 그는 어느 특정 시간에만 연락이 되었는데, 이게 소위 말하는 '밀당'인가 하고 아주 고민했더랬다. 알고 보니 그의 직업은 교도관이라, 수용동에 들어가는 근무 시에는 휴대폰을 넣어두고 들어가야 해서 출근 전, 식사 때, 퇴근 후에만 연락이 되었던 것이다. 그걸 이게 무슨 경우인가 고민했던 나는 자연스레 그에게 호기심이 생겼던 게 아니었을까.


연남동이 지금처럼 유명해진 지 얼마 안 됐을 무렵이라, 그는 연남동에 와 본 적이 거의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연남동 소개도 해 줄 겸 밥을 먹자고 했고, 금요일 밤에 우리는 만났다. 지금도 입고 다니는 투박한 겨울 파카를 입은 그는 솔직히 말하자면, 내 스타일은 아니었다. (실은 그도 내가 그닥 자신의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날은 하얗게 눈이 내려 연남동이 온통 겨울 느낌이 만연했던 때였고, 미끄러질 듯한 얼음들이 곳곳에 얼어 있어 구두를 신은 내가 자꾸만 뒤뚱했다. 그런 나를 유심히 지켜보던 그는 내가 미끄러지지 않게 슬쩍 잡아주었다. 그래서 약간의 벽이 사라진 탓이었나. 밥을 먹고 술을 한 잔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가 꽤 진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왜 교도관이 됐어요? 나는 처음 듣는 직업이라서 궁금해요."

"교도소가 들어오고 나면 다시는 안 오고 싶은 곳이 되었으면 해서요. 그러면 범죄율도 줄어들 테니까."


흔히 듣던 공무원이 된 이유가 아닌 구체적이고도 그만의 확실한 꿈이 있는 것 같아 그가 더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에게 내 이야기도 더 솔직하게 말하게 됐고, 그도 자신의 대학 시절부터 지금 일하는 이야기까지 꽤 오랫동안 우리는 이야기를 나눴다. 둘 다 술도 센 편이라 왠만큼 마셔도 취하질 않아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는 그에게는 글을 쓰고 시를 쓰는 내가 또 신기했다고 한다. 서로가 신기해진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다 보니 또 그날 밤을 꼴딱 새고 말았다.


각자 서로의 스타일이 아니었던 두 사람이 이야기하던 어느 겨울 밤, 우리는 그 만남이 결혼까지 이어질 지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채 만남을 시작했다. 수더분했던 교도관 남자와 글 쓰는 당돌한 여자가 그렇게 만나게 된 이야기. 그리고 그와 결혼해서 거제에 살게 된 지금까지. 정말 삶은 알 수 없는 것 투성이라는 것을, 우리는 매번 실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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