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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Jan 09. 2024

결혼 후, 비로소 더 쓰고 싶어졌다

나를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사람

오랫동안 쓰는 사람이라는 나의 자아를 애써 누르고 살았다. 일이 바빠서, 내겐 본업이 있으니까 하는 핑계로 언젠간 쓰는 사람으로 돌아가겠지, 하고서 간간이 써 온 시 몇 편과 글들만 써 왔다. '신춘문예 당선 뭐 별 거 아니네' 하는 말들이 주변에서 들려도 참고 넘겨야했다. 쓰는 자아는 나를 먹여 살리지는 못했으므로.


생계를 위해 시작했던 일은 어느새 나를 잡아먹고 있었다. 일에 치여서, 사람에 치여서 살아온 시간들은 별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쓰는 자아는 더 빛을 잃어갔다. 나는 과연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맞았던가? 하고 되묻던 때, 결혼 후 아빠가 집으로 보내준 짐들을 풀다 학창시절의 생활기록부를 발견했다. 중학교 때부터 나의 꿈은 기자 혹은 작가. 무엇이 됐든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꿈은 확실했다. 각종 글쓰기 상들이 빼곡하게 적힌 수상 내역을 보면서, 한결같이 국어국문학과를 지망하던 그 때의 나를 보면서 확신했다. 나는 쓰는 사람, 쓰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읽히길 바라는 사람이라고.


그와 함께 거제에서 신혼을 보내기로 하고 나서, 남편은 내게 말했다. "다른 일 하려 하지 말고, 너가 쓰고 싶던 것들을 마음껏 써봐." 당장 생계가 급한 것은 아니니 쓰는 게 나의 본업이었던 것처럼 살아보라고. 10년 가까이 월급 받는 일만 해 왔던 내게 오로지 쓰기만을 위한 시간을 가져보라는 그의 말은 설렜고, 고마웠다. 나를 쓰는 사람으로 다시 만들어 준 그와 평생을 함께 하기로 한 건 정말 잘 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나다운 길을 가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당신이라서. 잘 읽히려 하는 글이 아니라, 무언가 대가를 바라며 쓰는 게 아니라, 오로지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고 읽는 시간을 가져보라는 말. 어쩌면 내가 간절히 듣고 싶었던, 스스로에게도 외쳐주고 싶었던 말.


그래서 써 보기로 했다. 먼저 내가 쓰고 싶던 이야기는 뭘까, 나는 왜 쓰는 사람이 되고 싶던 걸까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일 하지 않는 나를 내가 스스로 인정할 수 있을까를 여전히 고민하고 있지만 우선 타자기부터 두들긴다. 돈벌이가 되는 일만 가치 있는 일은 아니니까. 내 길을 가다 보면 어떻게든 다른 일들은 생겨나겠지 하고서.


이전에 쓰고 싶던 것들은 많았지만 당신과 나의 이야기가 가득한 이곳 거제에서는 우선 우리가 주인공이 되어보기로 한다. 장난 가득한 말 뿐이어도 항상 내가 먼저인 당신을 통해 나는 계속 다시 태어나고 있으므로. 나밖에 모르는 나를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므로. 당신 하나만 있는 이곳에 있어도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꽉 찬 사랑을 입에 물려주는 당신이므로. 결혼 후 더 쓰고 싶어진 나는, 특별하지 않은 우리도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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