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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Apr 09. 2024

서른 둘의 인턴 (1)

이렇게까지 열심히 살 생각은 없었는데

두 달 간 글을 쓰지 못했다. 남편을 따라 거제로 오게 되면서 서울에서의 일들을 모두 정리했고, 내게 쓸 시간이 많이 주어질 거라 생각했건만 오고 난 뒤부터 두 달 간 바쁜 나날을 보냈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한 채용 공고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동하여 지원했고, 그 다음 주부터 바로 출근을 하게 되면서 나는 서른 둘에 '인턴' 생활을 시작했다.



인턴을 받아야 할 나이에 스스로 인턴이 된 나라니, 스스로도 웃겼지만 이렇게 새로운 곳에 와서 새로운 일을 바로 시작하게 된 내가 대견하기도 했다. 그간 일하던 출판 업계와는 완전히 다른, '공연'을 기획하고 홍보하는 곳에 일하게 된 나는 정말 막연한 생각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간제'니까 내게 기대하는 바가 많지 않겠지, 하는 마음으로 책임감이 덜할 수 있는 이 포지션이 꽤 좋기도 했다. 지금은 새로운 곳에서 생활하게 된 것, 신경 써야 할 가족이 생겨난 것만으로도 에너지를 많이 쏟고 있기에 어떤 일이 내게 딱 주어지는 것이 아닌 '출근하는 나'만이 필요했던 시기였으니까.


매년 3월 말과 4월 초, 일하고 있는 이곳에선 '국제음악제'가 개최된다. 세계에서 내로라 하는 클래식 뮤지션들이 이곳을 찾아 연주하고, 클래식 애호가들이 고대하는 곳이라 모든 스탭들이 2월부터 바짝 긴장한다. 사실 음악제가 개최된다는 것만 알고 왔던 것이기에, 내게 앞으로 주어질 일들이 어떻게 펼쳐질 지는 전혀 모른 채로 일을 시작했으니 매일 이들이 작년부터 해온 일들을 따라가느라 공부를 해가며 일을 따라가야 했다. 공부하는 것까지는 마음 먹었으니 매일 새로운 것들을 접하는 것이 설레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이 작년부터 준비해온 모든 것들을 홍보하고 퍼트리는 나의 업무는, 그만큼의 애정이 생겨나기에 부족한 시간 동안만 일을 하는 것이다 보니 꽤나 힘에 겨웠다. 그래도 이곳에 민폐를 끼칠 순 없으니 열심히 하려 노력했다. 그간 내가 일해온 것들을 총망라해서 도울 수 있는 데까지는 돕자고. 


더 힘을 낼 수 없을 만큼 힘에 부칠 때에 이곳으로 온 터라, 열심히 나서서 일할 생각은 크게 없었다. 그러나 일이란 건 안 하려 하면 할수록 마음이 더 불편해지기도 하고, 그렇게 일하다 보면 헛된 노력 같아지기도 하는 것이 아니던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빼지 않고 해내는 편이 마음이 편하기에, 경제적인 보상이 따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저 '같이' 일한다는 것에 조금은 힘이 났던 것 같다.


낯선 지역에서 낯선 업계의 일을 해보는 이 시간이, 다시 살 수 없는 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그리고 서로 힘들지만 힘든 그 노고를 서로가 알아주는 동료들 간의 눈짓과 다독임으로. 서른 둘에 시작한 인턴 생활은 그렇게 타지에서의 신혼 생활에서 내가 한 사람의 아내만이 아닌, 나로서 살아가는 삶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나이도, 적은 나이도 아니지만 새로운 것에 도전해볼 수 있는 마음을 먹게 된 나에게 대견하다는 말을 전한다. 그리고 일할 수 있는 방면은 생각보다 더 많다는 것을, 새로운 시작을 두고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떠나가지 않으면 새로운 시작도 없다. 망설이고 있다면, 한 번쯤은 과감해지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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