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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롱할영 Apr 12. 2024

서른 둘의 인턴 (2)

결혼 한 인턴은 처음이라 한다

출근한 지 며칠 됐을 때였다. 이곳에서 가장 오래 일하셨다는 팀장님께 아침 인사 드릴 겸 일상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남편이랑 어제~"로 시작하는 말을 하는 순간 "엄마야, 자기 결혼했었어? 결혼 한 인턴은 또 처음이네!"라고 말씀하시던 거였다. 그래서 스스로도 한 번 더 생각했다. 아, 내가 서른 둘에 인턴이라니. 결혼하고 인턴을 하게 되다니! 직장 경력 8년을 뒤로 하고 새로운 업계에서 인턴을 하게 된 나의 상황을 다시금 인지하게 됐다.


급했던 일들이 조금씩 마무리가 되고, 남편과의 이곳 거제 생활을 어떻게 적응해나갈지 생각하던 와중에 관심 있던 분야에서 일하게 된 건 행운이었다. 누군가는 정규직이 아닌 것에 아쉬워할지 몰라도, 지금 나에게는 정규직 자리의 무게는 무거운지라 지금 정도의 기간이 딱 적당했다. 덩달아 남편과 출퇴근길을 함께 하게 된다는 것에 설레기도 했다.


급하게 운전을 배웠다. 장롱면허 12년이 되어서야 직접 차를 몰게 되다니, 이것 역시 새로운 기분이었다. 대중교통이 도시처럼 원활하지 않은 이곳에서는 운전은 필수였다. 그러지 않으면 몸이 너무 고생하기도 하고, 출퇴근 시간을 맞추어 다니려면 운전해서 20분이면 될 거리를 1시간이 걸려 다녀야했다. 더듬더듬이지만 운전을 시작한 나는 남편과 함께 출퇴근을 하면서 남편의 지도를 곁들여 운전을 익혔고,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고속도로 운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겪게 된 변화들에 설레는 마음이 좋았다.

공무원인 남편과 사기업만 다녔던 내가 서로 일 얘기를 할 때 좁혀지지 않는 간극이 있었는데, 바로 업무 처리의 절차나 사내 분위기에 대한 것들이었다. 엄연히 공직 사회와 사기업의 문화는 달랐고, 업무 처리 과정도 많이 달라서 서로 회사 이야기를 하면 "이건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건가?" 혹은 "그건 이러이러한 절차가 먼저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하는 말들을 하다 보면 끝에는 "와 진짜 서로 일하는 게 다르다!"로 끝나곤 했다. 이곳 재단에서 일하게 된 뒤로, 그가 말하던 공직 사회의 업무 처리 과정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게 되었고, 왜 그런 절차들이 필요한지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덕분에 남편이 회사 이야기를 하면 이제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 조금 더 많아졌다.


인턴을 하면서 얻게 된 장점 또 하나는, 이 지역에 적응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됐다는 점이다. 남편과 나 모두 이곳에서는 외지인인 탓에 밥을 먹어도 어디가 괜찮은지, 어떤 도로로 다녀야 길이 덜 막히는지 등 로컬들만 알 수 있는 정보를 알 길이 없었다. 인턴이자 외지인으로 이곳에 있으면서 지역 내 많은 정보들을 알게 되었고, 사람들도 알게 되어 제법 이 지역 거주민이 되어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됐다. 교도소에서만 근무하는 남편은 알 수 없던 지역의 면면들을 발견하면서 이곳에 더 정을 붙이게 되었고, 내가 알게 된 곳들을 남편과 함께 다시 가보면서 이곳에 사는 기쁨을 더 누리게 되었다.


갑작스레 인턴으로 돌아간 삶도 꽤 괜찮다. 얼마 되지 않는 기간 동안 함께 일하는 것이지만 외지인이라고, 잠깐 있다 갈 사람이라고 차별하지 않는 이곳 사람들이 또 고맙다. 서른 둘에 새로운 곳에서 일하기 시작한 우당탕탕 인턴 생활이 제법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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