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눈이 온다. 그리고 쌓인다. 익숙한 아파트 진입로에는 학생들이 열심히 눈덩이를 굴리고 있다. 경비아저씨가 눈 맞으며 한쪽으로 몰아둔 눈을 두 손으로 잡아 눈사람에게 살을 붙인다. 손을 호호 불어가며, 코를 슥슥 문지르며 그렇게 하나의 사람을 탄생시킨다. 나뭇가지를 주워 손을 만들고, 나뭇잎이나 작은 돌을 주워와 얼굴을 마주한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눈사람에게 목도리를 둘러주거나 모자를 씌우기도 한다. 그렇게 동심을 챙기고 뿌듯한 마음에 집에 들어가 몸을 녹이고 잠을 청한다. 그렇게 겨울을 나는 동안 나와 함께 할거 같았던 그 녀석은 빠르면 아이가 잠에 든 그날 밤, 아니면 다음날 아침 정도쯤에는 쓰러진 채 발견된다. 누군가의 폭격이 있어 보이는 자태로 쏟아져 흘러 손은 원래 있던 땅에게 돌아갔고 얼굴과 몸통 또한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있다. 침입자가 누구인지는 모르는 아이는 그저 멍하니 어제의 추위를 바라보다 갈길을 갈 뿐이다. 누가 그랬는지 모르지만 사람의 행적이 다분한 이 행위를 보고 나는 인터넷 실명제를 떠올렸다. 인터넷 세상에서 다분히 일어나는 일이 현실 세계로의 연장되는 느낌이었다. 인터넷에 댓글을 쓰는 사람은 분명하게도 사람이다. 하지만 그/그녀를 특정할 수는 없다. 어디에 사는지 나이가 몇 살인지, 이름이 무엇인지. 닉네임이라는 가면 속에 숨어 특정한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나는 인터넷 실명제에 긍정적인 편이다. 애초에 댓글이라는 것을 잘 쓰지도 않고, 쓴다고 해봤자 감동받아서 사랑을 보내는 식의 응원댓글이라 누구에게 꿀릴 것도 없다는 것이 나의 이유이다.
만약, 아이의 눈사람을 망가트린 사람이 그 밑에 명함을 두고 갔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흘러들어왔다. 아이는 연락을 했을 것이다. ”왜 내 눈사람 부쉈어요!!! “ 명함의 주인은 대답할 것이다. 그것이 어제 자신의 폭력성에 대한 변명일 수도 있으며. 눈길에 발을 헛디뎌서 생긴 불가피한 상황에 대한 설명일 수도 있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는 사과일 수도 있을 것이다. 발생하는 모든 사건현장에 명함을 두고 떠나면 세상이 좀 더 책임감 넘쳐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상처받은 사람은 상대방에 의도를 알게 되고, 상처를 준사람은 사과할 수 있는. 어쩌면. 사랑 넘치는 세상이 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