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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리(攝理)

그가 떠난 후(14)

by 김영주

믿어지지 않지만 벌써 4 개월이 지났다. 그와 만난 이래,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어 본 적은 없었는데…. 그간 나와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왔던 걸까? 엉클어졌던 생각의 실뭉치는 조금씩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여전히 완전하지는 않지만….


“왜?” 자책과 혼란의 감정은 나를 압도하며 멈춤 없이 순환했었다. 당뇨와 고혈압 약을 복용해 왔지만 올해부터는 수치상으로 늘 정상 범주에 머물러 오히려 걱정을 덜었었는데 모든 일상생활을 평소와 다름없이 하고 평소와 다를 바 없었던 취침 시간에 잠을 청한 그가 숨을 거둘 것은 누구도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옆에서 잠들어 있던 내가 밤새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자괴감은 나를 절망의 수렁, 그 밑바닥으로 던져 버렸었다.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났기 때문이었을까?
그가 담긴 작은 상자를 묻던 예배의 날, 눈물로 범벅이 된 채 눈도 뜰 수 없었던 내 앞에 그는 20대의 모습으로 나타났었다. 가까운 거리는 아닌 듯 멀찍이 서 있던 그는 씩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생각지 못했던 그의 출현에 얼마나 놀라고, 반갑고, 아깝고, 슬펐던지 다만 그가 혹시 사라질까 봐 안타까이 속엣말로 ‘가지 마 가지 마…’만 되풀이했었고 그는 그렇게 한동안 그곳에 서 있었다. 그날 그의 옷차림은 플레이드 패턴이 있는 연갈색 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그 또한 의외였다. 그가 천국에 있다면 하얀 세마포로 지은 옷을 입고 있었어야 하는 게 아닐까? 하여 그때도 이후 한동안도 혼란스러웠다. '그 옷차림은 뭐지?’


그는 아이들과 내 꿈은 물론 몇몇 교회 식구들의 꿈에도 등장하였고 나와 또 다른 분에게 목소리로 나타나기도 했었다. 우리 아이들에게는 가장 최근 그의 모습으로 나타났었다고 하는데 나를 비롯한 몇몇 분들의 꿈에서는 젊은 시절의 모습이나 백목련 나무, 혹은 커다란 날개를 펼친 학의 형상으로도 등장했었다. 누군가는 “소천하신 분이 소천 후 단기간 내에 이렇게 여러 사람의 꿈에 등장한 예가 있었을까?”라고 했었다. 나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었다. 꿈결에라도 뵙고 싶었지만 소천하신 후 부모님의 모습을 뵈온 것은 두어 번뿐이었으니… 지난주에는 정말 이상한 일이 있었다. 새벽녘 꿈속에 남편과 엄마가 동시에 출연하였다. 엄마는 내 옆에 계셨지만 모습이 잘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느껴졌는데 소천하시기 직전보다 훨씬 건강하고 젊으신 것 같았다. 엄마가 소천하신 후 1-2년 후쯤이었을까? 꿈속에 오셨을 때처럼, 여든여덟에 급성으로 진행된 심장 마비로 소천하셨을 때보다 젊어 보이시던, 한 60대의 쯤으로 생각되는 건강해 보이셨던 바로 그때 그 모습인 것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꿈속에서 나는 엄마가 소천하셨다는 인식이 없었던 것 같다. 그는 어딘가 벽에 기대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나는 또 그의 옷차림을 찬찬히 살폈었다. 그는 온통 검은색의 옷차림이었다. 터틀넥 셔츠에 바지, 신발, 후드가 달린 검은 점퍼는 적당한 광택이 나는 나일론 소재인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천국에 있다는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으므로 소천 후 환상에서 나타났던 그가 하얀 세마포로 지은 옷을 입지 않고 평상복 차림이라 의아했던 때와 같은 생각은 더 이상 들지 않았었고 그의 모습은 마치 특수임무를 맡은 특수 요원의 복장처럼 생각되었던 것 같다. 특이한 점이라면 검고 풍성한 그의 머리칼 위에 엄지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크기만한 부분이 하얀색이었다는 거다. 그는 좀 지쳐 보였고 나와 엄마 모두 암묵적으로 그는 소천했으며 어렵사리 이곳에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힘들게 왔어?라고 물으니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응”이라고 대답했고 나는 안쓰러운 마음에 다시 “애썼지?”라고 물으니 그는 또 “응”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나는 같이 교회에 가자고 했고 그는 “내가 운전할게”라고 했지만 나는 “내가 할게”라고 말하니 그는 “내가 불안정하니까?”라고 반문하였고 나도 짧게 “응”이라고 대답하니 그는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 었었다. 우리가 교회에 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오늘 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장면은 여기까지이다. 그리고 그 꿈에서 깨어난 후에는 성탄절과 연말이라는 특별한 시기이고 보니 더욱 그분들이 그리워 그랬었나 생각했었다. 아침이 되어 딸아이에게 꿈에 할머니와 아빠를 동시에 만났다고 얘기하니 딸아이는 깜짝 놀라며 자기도 지난 새벽녘 꿈에 두 분이 동시에 나타났었다고 한다. ‘이건 또 뭐지? 그 두 분이 정말 왔다 가신 걸까?’

나는 크리스천이며 스스로 그다지 신비한 일들을 추구하거나 믿는 편의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데 그가 떠난 후 내게 나타난 이와 같은 현상은 무엇일까? 너무 그리워 환상과 꿈의 모든 장면은 마치 각인된 듯 내 기억 속에 저장되어 그 모든 장면들을 결코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누군가 한 사람쯤은 어떻게 옆에서 잠들었었으면서 모를 수가 있었냐고 물었던 것 같은데 그 밖에 모든 나의 친구들과 교회 식구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예들을 통해 모를 수 있다고 했었고 누군가는 하나님의 일정을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겠냐고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얘기들을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계속 의문의 질곡과 회한과 자책의 광야를 헤매고 있었다. 다만 어느 만큼 시간이 지난 후, 교회 식구들의 꿈에 나타나 보였던 그의 말과 행동이 그가 우리에게 남기고픈 얘기들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었었다. 누군가의 꿈에서 하나님 앞에 열심히 일하는 모습으로 그 꿈을 꾸신 분은 속으로 ‘저 사람은 저기서도 무슨 일을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나?’라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어느 분의 꿈에서는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밝은 초록빛으로 언제나처럼 그 사람 좋은 웃음을 활짝 웃고 있는 모습으로 나왔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사랑하고 살다 다시 만나자.”라는 메시지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라는 위로로, 가장 많이 꿈속에서 아빠를 만난 딸아이는 어느 날인가 꿈에 우리 세 식구가 식탁에 앉아 울고 있었는데 자신의 졸업식 때 찍은 가족사진 속의 아빠가 우리 곁으로 나와서는 “내가 있잖아, 아빠가 언제나 함께 있을 거야. 언제나 무엇이든지 도와줄 거야.”라고 얘기했다고 했었다.


실제로 나는 소천 후 성도의 나날이 어떠할지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지 않다. 다만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아 그 오랜 소망의 나라에 입성하게 될 것을 알 뿐이다. 말씀을 통하여 그곳은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다른 빛이 필요치 않으며 언제나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곳이라는 정도의 지식이다. 그래서. 엄마가 소천하신 후, 매일매일 눈물의 나날을 보내며 엄마를 그리워하던 때, 나는 인터넷 검색창에 “천국”을 검색해 본 일이 있었다. 그 글자를 검색창에 치고 엔터 키를 누르면 천국의 모습이 펼쳐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으로….

나는 소천 후 환상과 꿈을 통해 만났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며 재생에 재생을 반복하곤 했다. 그러다 문득 하관 예배 때 20대의 모습으로 나타났던 그의 옷차림이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와 같다는 것을 생각해 냈다. 그랬었다. 9월 초, 늦여름이거나 초가을쯤으로 그는 연갈색 바탕에 플레이드 패턴이 있는 긴소매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소매는 단정하게 롭업한 채였고 또 청바지차림이었다. 왜 그때 모습이었을까? 생각하다가 문득 ‘정해져 있었던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몰랐지만 물론 그도 몰랐을 테지만 하나님은 이미 정해 놓고 계셨던 걸까? 그래서 처음 만났던 모습으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게 하신 것이었을까?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섭리인가? 기독교에서 섭리(攝理)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의 모든 피조물을 전적으로 다스리시는 이치를 뜻한다. 피조물은 알 수 없으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정해두시고 시행하신 일이라면 무엇보다도 안전하고 평안하며 옳은 일이었을 것임을 수긍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비로소 헤매던 의문의 질곡과 회한과 자책의 광야를 벗어나게 된 것 같다.

엄마와 그가 동시에 나타났던 나의 꿈 얘기를 들은 한 친구는 가수 박정현의 “꿈에”라는 노래의 가사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그 노래의 가사를 검색하고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 가사를 지은 작사가의 의도가 어떠했지는 모르겠으나 적어도 내겐 그와 나의 얘기와 같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얘기했었다. 엄마가 그에게 왜 이리 빨리 왔냐고 나무라실 것 같다고… 또 다른 누군가는 엄마가 제일 먼저 달려 나와 수고 많았다고 위로하며 환영해 주실 것이라고도 했다. 참으로 그리운 두 분이 함께 계시는 그곳을 생각하며 나는 어느 때보다 천국의 소망으로 충만하다. 어느 날 나도 그곳에 가서 그리운 두 분을 조각난 꿈속의 장면이 아닌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만날 날이 있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도 예수님도 정말 뵙고 싶고 궁금하지만 솔직히 지금으로선 엄마와 남편이 더욱 궁금하고 보고프다. 벌써 4개월이 지났으니…. 시간은 그리 더디지 않을 수 있다는 소망이 생겼다. 내게 남은 임무인 성도로써 엄마로서 사명을 잘 감당하고 그날을 맞을 수 있기를 고대하고 소망한다. 모든 것은 섭리, 다만 나는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모든 것을 정해 두셨으며 모든 것을 이루실 가장 옳으신 그분을 신뢰하며 나의 날들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겠지. 그리고 불현듯 나는 오랫동안 풀지 못하여 남겨둔 숙제인 “맡김”의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될 것 같은 소망을 직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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