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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Dec 11. 2022

나만 아는 번호





나만 아는 번호로 전화를 건다. 오로지 나만 아는 번호.


"여보세요"


그의 목소리.


"여보세요"


나는 그의 말을 그대로 따라한다.


"당신이야?"


나는 또 그를 따라한다.


"당신이야?"


"……"


그는 아무 대답 않는다. 당연히 나는 나고 당신은 당신이다. 단 한 사람을 위한 번호. 아무 의미가 없는 번호. 그래도 나만 아는 번호.



정적.




"어디야?"


어딘지 정말 궁금한 걸까. 나는 물음표를 받았지만 마침표나 느낌표 대신 또 다른 물음표를 돌려준다.


"뭐하고 있어?"


"운동하고 씻고 왔어."


예상했던 답변이다. 한치도 벗어나지 않음에 안도 비슷한 것과 조금의 지루함 따위를 동시에 느낀다.


"그래?"


"응, 지금 뭐하고 있는데?"


나는 딱히 뭘 하고 있다고 대답하기가 애매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있지도, 그렇다고 뭘 하고 있지도 않은.


"그냥, 스타벅스 사탕먹고 있어."


사탕만 먹고 있는 건 아니었다.


"이번 주에만 그걸 몇통을 먹는거야."


못 말리겠다는 목소리. 뒤에 바람에 날리는 모래처럼 부서지듯 흩어지는 웃음이 좋다. 그래, 나만을 위한 웃음. 내게만 짓는 웃음. 소리만 들어도 생생한 표정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나는 단박에 기분이 좋아진다. 모래같은 웃음도, 흩어지는 웃음도 그냥 그렇지만 모래같이 흩어지는 웃음은 좋다. 모래를 닮은 베이지색 담요를 덮은듯 포근하달까. 소리에도 온도가 있을거야. 그걸 감지하는 장치가 있다면 그 웃음은 따뜻할거야, 분명.









"오늘 병원에 사람 많았어?"


"응, 역대급이었어."


"진짜?"


"응, 진짜."


너의 목소리가 진짜임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꽤나 지친 목소리.


"이따 몇시쯤 볼까?"



몇. 시. 쯤.

나는 요즘 약속 시간을 정할 때 평소보다 더 오래 고민한다. 그렇게 되었다.







"나 내일 그 근처가요."


"그래요? 그럼 점심시간에 잠깐 짬내서 보러 갈게. 같이 커피라도 마시자."


"좋아. 몇시쯤?"


몇. 시. 쯤.








"거기 예약했어요."


"진짜? 예약 성공했어?"


"응!"


"거짓말. 나한텐 안 된다고 했는데. 올해는 예약 꽉 찼다고."


"나 방금 통화했는데 예약된대서 했는데?"


"진짜? 몇시?"


"7시."


일 곱 시.








나만 아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온다. 나만 아는 번호.


"여보세요."


"어디에요?"


"집이에요."


"잠깐만 내려올래요?"


"아, 나 화장 다 지우고 누웠어요."


"벌써요?"


"네, 오늘 왔다갔다 많이 했더니 조금 피곤해서."


"1분만."



일. 분. 만.

일분? 일분. 진짜 일분? 진짜 일분.



"아으아아 빨리 잠깐만 나와. 스타벅스 사탕 잔뜩 사왔는데에."


"지금 갈게!"


"와, 나 그래도 꽤 먼길 왔는데 나보다 사탕을 더 반기고. 좀 서운할라그래?"


"미안한데, 그 사탕은 정말 너무 맛있어."


이 일대 스타벅스를 돌아다니면서 내가 좋아하는 사탕을 싹 쓸어왔다는 그. 뿌듯한 미소.



"고마워."


"너무 많이 먹진 마."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당신과 내 '너무 많이'의 기준은 다를 테니까.

 


"어어, 또 대답 안 해?"


"헤헤"


"뭐야, 또 웃어 넘길라고 그냥."



나에게만 짓는 웃음. 나만 아는 웃음. 나만 알고싶은 웃음. One and Only. 그런 거 참 느끼하고 유치하고 바보같다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나 봐. 나는 포기한다. 원앤온리 안에서 마음껏 행복해야지. 원. 앤. 온. 리.









약속 시간은 7시. 지금 시각은 6시. 나는 나만 아는 번호로 전화를 걸까말까 고민한다.



지이잉 -


나만 아는 번호가 핸드폰을 간지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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