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갔다.
메뉴판에 이런 글이 있었다.
가난하고 풍요롭다.
차갑고 뜨겁다.
명쾌하고 모호하다.
가리우면서 드러난다.
기억하고 지운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이 있다.
나는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시면서
각각의 문장을 곱씹어 보았다.
그래, 모든 것은 양면성이 있지. 뭐든 그런 법이지.
세상은 모순 투성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법이지.
그런 당연하고 어리석고도
놀랍고 진부해서 더 아름다운
생각들을 했다.
정갈하게 비워낸 마음이
공허함보다는 상쾌함으로 남았음에 감사하면서
나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하는 목소리는 역시나 따뜻하고 포근하고 늘 그렇듯 그 자리에 가지런히 있다.
우리는 별 거 아닌 얘기들로 배가 아프도록 웃고 숨이 가빠질 정도로 웃고 겨우 정신을 차리고 전화를 끊는다.
짧은 통화에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이 있다.
갓 구운 따뜻한 팬 케이크는
촉촉해서 기분 좋은 감촉을 남긴다.
따뜻하고 촉촉하고 폭신한
은은하게 달콤한 팬 케이크는
쌉싸름한 커피와 함께할 때
그 맛이 배가 된다.
너무 맛있다.
이 한 입 한 입과
소중한 이 순간을 즐겨야지.
팬 케이크가 식어가는 속도에 맞춰
커피와 함께 천천히 음미한다.
어느새 커피는 사라지고
빈 잔만이 남았다.
지금 여기,
아무것도 없으면서
모든 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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