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이 부분을 고쳐야겠어. 사막에 핀 한 줄기 꽃처럼, 이 부분.”
“어떻게……?”
“사막에서 만난 유일한 꽃 한 송이의 싱그러운 이런 식으로.”
“아, ‘유일한’을 넣을까요?”
“아니, 꼭 그렇게 하라는 게 아니라 ‘특별’하다거나 흔치 않은 ‘유니크’하다는 걸 좀 드러내란 말이에요.”
“아, 유니크.”
“알아들은 거 맞죠?”
“네, 아 네.”
‘유일한’을 추가하라는 말로 알아들었다. ‘싱그러운’은 양심상 넣지 못했다. 나에게 있어서 사막에서 유일하게 핀 꽃이란 싱그럽다기보다는 고독에 가까운 이미지였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조희 씨는 참 로맨틱한 게 부족해. 세상 아기자기하고 그런 거 좋아할 거 같이 생겨서.”
‘세상 아기자기하고 그런 거 좋아할 것 같이’ 생긴 게 어떻게 생긴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로서는 그게 욕인지 칭찬인지도 분간이 안 갔다. 욕이겠지, 뭐.
대충 멍하게 있자, 팀장은 그럼 가서 수정해서 다시 와요, 하고 귀찮고 성가시다는 듯이 말했다.
늘 이런 식이다.
H 향수업체의 마케팅 부서에서 일한 이래로 나는 자꾸만 거짓말이 느는 기분이 들었다. 주된 업무는 회사에서 새롭게 출시되는 향수의 소개말을 쓰는 일이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매번 불려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니, 아니, 좀 그림이 그려지게 써야지. 그래야 사람들이 살 거 아니에요?”
“아, 그림이 그려지게요?”
“그래요. 이렇게만 하면 어떤 향인지 상상이 안 되잖아.”
설명에는 베이스노트가 무엇인지, 미들노트는 무엇인지, 또 탑노트는 무엇인지를 상세히 언급하고, 잔향이 어떤 식으로 남는지, 어떤 향이 주된 향인지를 충분히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꼭 그런 것들이 설명되어야 대강 향을 떠올릴 수 있다고.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전혀 다른 듯 보였다.
“샌달우드의 오리엔탈한 무드와 어쩌고저쩌고 이런 거 다 빼고.”
‘샌달우드의 오리엔탈’이 제일 중요한 건데, 하고 속으로 거의 탄식에 가깝게 말했다. 그녀를 만족시키려면 내 기준에서는 정말 말도 안 되게 쓰는 수밖에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미쳤다고 생각하고 완전 말도 안 되게 휘갈겨 쓰고는 그녀에게 보냈다. 욕먹을 각오도 되어있었다. 내가 쓴 글을 보고 불같이 화를 내면, 저는 피드백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애쓴 건데요? 하고 불쌍하게 말하면서 은근한 반항을 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래! 이렇게! 아주 좋아요. 이것 봐. 잘할 수 있으면서 그래. 지금까지는 왜 그렇게 한 거야, 조희 씨?”
내 딴에는 거의 반항이었으나 그녀의 마음에는 쏙 든 모양이었다. 입사 이래 처음 듣는 칭찬이었으나,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수치심 내지는 굴욕감 비슷한 것이었다. 마침내 굴복하고 그녀가 원하는 문장을 쓴, 그것도 ‘말도 안 되는’ 문장을 써다가 바친 것에 대한 부끄러움.
나는 거의 얼이 빠지다시피 하여 멍한 눈빛으로 내가 쓴 문장을 바라보았다.
‘비 온 다음 날, 젖은 숲 속에서 우연히 발견한 어느 조용한 사찰에 들어서서 싱잉볼이 귀를 울리는 순간을 연상케 하는 동양적인 무드의 차분한 향.’
젖은 숲 속이 웬 말이며, 심지어 그곳에서 ‘우연히’ 발견하는 조용한 사찰이 다 웬 말이냐. 이게 죄다 뭐냔 말이다. 이런 설명이 정말 ‘향’을 느낄 수 있다고?
하지만 이런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 설명이 붙은 향수 ‘Secret Temple’은 불티나게 팔렸고, 급기야 ‘베스트’ 상품이 되었다. 심지어 다른 경쟁사에서 이를 모방한 ‘Silent Temple’이란 상품이 출시되기도 했다. 그 이후, 우리 회사 상품 설명에는 ‘따라올 수 없는 오리지널리티’, ‘흉내 낼 수 없는 시크릿 템플만의 오묘함’이란 표현이 추가되었다.
이후 모방품과 유사품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이게 ‘원조’입니다요, 하고 노골적으로 티를 내야 했다. 아니 그보다는 ‘우리 상품 빼고는 다 가짜입니다. 짝퉁이에요, 속지 말아요.’를 강조해야 했다.
어찌 됐든 사람들은 ‘고요한 사찰’보다는 ‘비밀스런 사찰’이 더 좋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향이 얼마나 좋은지와는 무관하게 모방품보다는 오리지널을 선호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녀의 말대로 꽤 많은 사람이 순전히 ‘상상’에 의존해 향수를 산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젖은 숲 속을 거닐다 우연히 작은 사찰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싱잉볼의 소리를 듣는 경험을 한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만에 하나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우리 향수를 살 확률은?
나는 없다고 확신했다. 따라서 사람은 경험에 의존해 판단하고 향을 구매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정말 ‘판타지’를 충족해주면 사람들은 어김없이 매력을 느꼈고, 그것은 실질적인 구매 즉, ‘결제’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로맨틱에 쉽게 지갑을 열었다.
덕분에 나는 승진했고, 회사의 매출도 크게 올랐다. 물론 그 매출의 9할은 ‘Secret Temple’에 있었다. 베스트 상품이자 효자 상품이자 내게는 가장 부끄러운 상품.
‘Secret Temple’의 상세설명을 읽을 때마다 나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수치심을 동반한 굴욕감 같은 것. 물에 빠져 나 살려고 버둥대다 우연히 같이 빠진 사람이랑 뒤엉켜 같이 물 밖으로 나왔는데, 생명을 구한 영웅으로 칭송받는 느낌. 혹은 마치 잘못을 저질렀는데 오히려 칭찬을 받은 기분.
회사는 신제품 출시에도 박차를 가했고, ‘Moist Temple’, ‘Tidy Temple’ 등 이른바 ‘Temple 라인’를 내놓았다. 향은 다 거기서 거기였다. 템플 시리즈는 그럭저럭 잘 팔렸다. 한 번에 세 개를 다 사는 사람도 있었다. 아니, 많았다. 품절 대란이 일어 재고 확보에 어려움을 겪은 탓에 예약판매를 진행하기도 했다.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템플을 좋아하는지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회사 곳곳에 전리품처럼 전시해 놓은 ‘Secret Temple’을 분사하고 눈을 감고서 지그시 향을 맡으며 생각했다.
음, 이건 샌달우드 향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