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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Nov 13. 2023

일기를 읽는 일




내가 쓴 일기를 시간이 지나 읽어보는 건 실로 신비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건 현실과 꿈, 그 사이 어느 경계 쯤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과거의 일기'라는 건 픽션도, 그렇다고 논픽션도 아닌 참 기묘한 장르다. 분명 내가 직접 겪은 일이고 내가 직접 겪은 감정인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그걸 읽고 있는 '나'는 그 일과 감정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죽을 것 같던 일도 이제는 덤덤하게 한 두 문장을 눈으로 가볍게 훑으며 넘길 수 있고, 구구절절한 감정도 이땐 왜 이렇게 감정과잉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못봐줄 정도가 되어 있다.


내가 통과한 시간들을 어느 지점에서 떨어져 바라보고 있는 기분. 결승선 너머에 서서 죽을 힘을 다해 이리로 질주해 오는 내 모습을 보는 듯한, 그런 일종의 '기시감'. 그래, 그럴 수밖에. 그건 내 감정이고 내 역사니까.





과거의 일기는 내가 현재 듣고 있는 음악에 따라 다른 감정으로 받아 들여진다. 읽는 시간에 따라서도 또 다르다. 그게 참 기묘하고도 신비롭다.


언제, 어떤 음악을 들으며 일기를 읽을 건지 생각한다. 이런 과정은 귀납적으로도 연역적으로도 일어난다. 새벽의 쳇 베이커(Chet Baker), 까만 밤의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 초저녁의 혼네(HONNE), 주말 아침의 아도이(ADOY)…….


시간과 음악은 매번 달라진다. 일기를 찾아 음악을 틀고 읽다보니 난 특정 시기에 특정 장르의 음악을 들으며 일기를 읽는구나, 하고 문득 깨닫게 되는 식이다. 참 재밌다.





그래서 나는 기록이란 참 신묘(神妙)하다고 생각한다. 신비롭고도 묘하다. 그 신묘한 힘을 믿는다.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


절절한 현재도 기록하는 순간, 과거가 된다. 되어 버린다. '힘들었다'라고 쓰는 순간, 힘든 현재는 힘들었던 과거로 치부할 수 있는 하나의 문장이 된다. '지쳤다'라고 쓰는 순간, 모든 감정과 에너지가 소진된 현재는 어떤 과거의 '상태'로 기록되고, 현재의 나는 그 기록 속의 나의 상태와 일정 거리를 두며 분리될 여지가 생긴다. 그럼 현재의 새로운 '나'는 지친 나보다 조금은 힘을 내 볼 수가 있고, 그렇게 또 새롭게 시작할 수가 있다.


그런 명분이, 여지가, 여유가 생긴다. 내가 꾸준히 일기를 쓰는 이유는 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일기란 나는 아직도 한참 어리구나, 그래도 나는 제법 성숙하구나, 나는 참 겸손하지 못하구나, 그래도 나는 제법 사사로운 것에는 연연하지 않는구나, 근데 나는 참 별 것도 아닌 것에 연연하기도 하는구나, 난 참 연약하구나, 한편으론 난 참 강하구나, 하는 일련의 과정들과 전혀 상반되는 감정, 상태들을 실시간으로 마주하게 한다.


이를 통해 내가 가만-히 머물러 있는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을, 이 세계를, 통과하면서 그렇게 조금씩 움직이고 깎이고 다치면서 살아가고 있는 존재임을 느끼게 해준다.



나는 꾸준히 성장하고 있구나- 하는 일종의 생(生)의 감각이랄까.






살아있다면, 살아있음을 느껴야지. 충-분--히---.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 글도 나중엔 얼마나 유치하게 느껴질까. 당연한 소릴 참 정성스럽게, 길고 지루하게도 써놨네, 그렇게 느끼게 될까.



이 글을 읽는 시점엔, 나는 어떤 음악을 듣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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