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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Jun 16. 2024

그래, 좋아



요즘 유튜브로 가끔 아기들이 나오는 영상을 시청한다. 아무 생각없이 보다가 애기들은 대답으로 응, 어, 그래 대신 그럼! 좋아! 와 같은 말을 훨씬 많이 쓴다는 걸 발견했다.


"네, 알겠습니다." 라는 건조한 대답에 길들여진 나는 그게 제법 인상 깊었다.


-우리 같이 놀자.

좋아!


-내일은 우리집에 놀러 와.

좋아!


-초코가 제일 맛있어?

그럼!


-이거 엄마 먹으라고 주는거야?

그럼!


이런 식이다.


그럼! 좋아! 모두 강한 긍정을 내포하고 있는 말로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적극적인 동의 의사를 표현하는 대답이다.


나도 어렸을 때는 좋아! 라는 말을 꽤 많이 썼던 것 같은데…아니 뭐 아주 어렸을 때까지 안 가고 20대 초반까지만 해도

"아이스크림 먹을까?"하는 일상적인 물음에도

"오, 너무 좋아!"

하고 좋아! 좋아요! 너무 좋아! 이런 대답 많이 했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터 안 쓰게 됐지?


그럼, 하는 대답은 조금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저 어린 아가들도

제안에 흔쾌히 좋아! 하고 승낙하고,

상대방의 물음에 그럼! 하고 수긍하는데

언제부턴가 좋아도 그래,

그냥 그래도 그래,

좀 마음에 안들어도 귀찮으니까 그래,

가 되어버린 것 같아 조금 씁쓸했다.





요즘 부쩍 내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하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이 고민을 30대가 되어서도 이렇게 치열하게 하게 될 줄 몰랐는데 인생은 참 다채롭구나. 끝이 없는 갈림길이 나오는 구나. 그래도 그게 인생의 묘미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지금의 나는 미래의 내가 보면 또 얼마나 치기 어리고 어리숙한 존재일 것인가. 그런 걸 의식할 틈도 없이 나는 선택의 순간에 집중하기로 한다.


이 고민도 다음주면 유효기한을 넘기고 어떤 결정이 내려져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면 그냥 속이 편하다.






어느 순간 강한 긍정의 언어를 잃어버린 어쭙잖은 어른이 이제서야 비로소 그걸 인지하고 언어를 되찾겠다 결심한다.


사고는 무의식적으로 언어에 묻어 나오고,

언어는 사고를 지배한다.


그러니 지금부터

아주 사소한 물음과 제안일지라도


응, 대신에 그럼!

그래, 대신에 좋아!


라고 대답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해야지.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렇게 대답하고 있을 때쯤, 해맑은 아이들처럼 좀 더 순수하게 세상을 볼 수 있을까. 지금보다 조금은 더 긍정적인 사람일 수 있을까.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다음 주 토요일에 같이 밥 먹을래?

그래, 라고 썼다가 덧붙인다.

"그래,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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