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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Jul 01. 2024

메조 피아노의 시기




딱복과 말복이 있다면 나는 단연 딱복파다. 말랑말랑한 복숭아는 한 입 베어물었을 때 팍 터지는 그 풍부한 과즙이 매력적이지만, 아삭아삭 딱딱한 복숭아가 나는 더 좋다. 과육을 혀로 짓이기는 대신 꼭꼭 오래 씹으면서 향을 좀 더 깊게 느낄 수 있달까.


얼마 전 ‘신비복숭아’를 처음 먹어봤다. 신비복숭아는 천도복숭아와 백도복숭아의 장점만을 모아 개량한 복숭아라고 한다. 초여름 한 달정도 잠깐 맛볼 수 있는 복숭아라고 해서 또 호다닥 주문해봤다.


생긴 건 꼭 자두같다. 자두만한 크기의 자그마한 신비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물었는데, 딱딱한 과육이었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아니면 아직 후숙이 덜 된 탓인지 몰라도 기대했던 만큼 신비로운 맛은 아니었다. 또 하나를 집어 먹어봤더니 이번에는 과육이 말랑말랑했다. 딱복과 말복이 복불복으로 걸리는 신비(?)가 있어서 신비복숭아인건가.






요즘 부쩍 엄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최근 읽고 있는 책이나 자주 보는 예능에서도 엄마 얘기가 나온다. 'H마트에서 울다'를 읽는데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다 멈추다 읽다 멈추다 한 탓에 영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다. 아직도 앞부분 조금밖에 읽지 못했다. 읽다가 엉엉 울어버릴까봐 팍팍 읽어 나가질 못하겠다.


이효리가 나오는 예능 '엄마, 단둘이 여행갈래?'를 보면 그렇게 눈물이 나는 장면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난다. 항상 울면서 본다. 물론 내가 보는 장면들은 단편적인 그들의 모습이기 때문에 그들의 역사와 상처의 깊이를 미처 다 헤아리진 못하겠지만, 나는 이효리보다도 자꾸 이효리 엄마에게 시선이 갔다. 이효리 엄마의 서운함, 조심스러움, 머뭇거림, 용기, 망설임, 미안함, 멋쩍음, 당황, 피로, 사랑 같은 게 그녀의 표정과 행동 곳곳에서 보였다. 엄마에게 자식은 다 커도 항상 아이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걸까. 엄마의 영원한 아기.


엄마와만 할 수 있는 얘기가 있고 또 그만의 공감대가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엄마에게만 특별히 서운한 점도 또 미안한 점도 생기는 것 같다. 엄마 역시 아들에게는 하지 못하는 얘기를 딸에게 하기도 한다. 엄마와 딸은 아빠와 딸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관계성이 있는 것 같다.





제철음식, 제철과일을 잘 챙겨먹고 그 계절에만 할 수 있는 스포츠나 야외 활동을 하면서 그 계절을 온전히 흠뻑 느끼는 일. 그렇게 4계절을 보내면 1년이 훅 지나 버린다. 벌써 봄은 다 지나고 여름의 가운데에 있다. 하지도 지났으니 여름 한 가운데도 지난 셈이다. 참 별 거 아니고 간단한 일인 것 같은데, 4계절을 온전히 느끼면서 1년을 지낸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매번 실감한다. 정신없이 호다닥 지내다보면 한 계절이 이미 다 지나간 후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제철 음식이나 과일을 챙겨먹으려 한다. 그 과일을 먹었으니 그 계절을 지나왔고, 느꼈다고 쉽게 합리화(?)하기 좋다. 물론 그런 것도 있지만, 제철 음식은 그 계절이 제일 싸고 맛도 있어서 먹는 순간 너무 행복해진다. 초당 옥수수와 망고, 복숭아, 수박으로 매일 여름을 한 움큼씩 먹으면서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대신 모기와의 사투를 벌이고 있다. 아빠가 추천해준 버무리(?)인가 무튼 그걸 모기에 물리자마자 발라주면 정말 효과가 좋다. 여름은 정말 다 좋은데, 너무너무 좋은 내 최애 계절인데, 벌레와 모기는 도무지 사랑해 줄 수가 없다.




요즘 슈베르트와 쇼팽, 모차르트 등의 곡이 수록된 책을 펴서 랜덤으로 나오는 악보를 마구잡이로 치고 있다. 포르테가 돋보이기 위해선 기가 막힌 피아니시모가 있어야 한다. 피아노, 피아니시모가 포르테를 빛나게 한다. 여리게 여리게 점점 더 여리게 치다가 한 박자 쉬고 세게 치는 그 첫 마디 음표에서 전율을 느낀다. 인생에도 그런 시기가 있겠지. 포르테로 강하게 휘몰아치는. 또 그렇게 도약하기 위해 도움닫기 하듯 준비하는 시기도 있을 거고.


인생에도 셈여림표가 있다면 지금은 포르테를 위해 달려가는 잔잔한 '메조 피아노(다소 여리게)' 쯤을 몇 마디 지나고 있는 것 같다. 포르테의 전율을 준비하며 여리게, 또 여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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