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이렇게 시작하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대부분 시답잖은 타인의 이야기나 비밀, 치부를 내게 대신 전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내게 말을 전하는 사람도 상대에게 똑같은 당부의 말로 이 얘기를 전해 들었으리라. 나는 그 릴레이가 나에게 오는 순간 뚝 끊기길 염원하면서 정말 아무에게도 전하지 않는다.
개중에는 별 거 아닌 얘기도, 꽤 치명적인 이야기도 섞여 있지만 그런 얘기들이 하나둘 쌓이다 보니 내 마음도 썩 좋지만은 않다.
고백건대 나는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비밀 같은 건 딱히 없는 것 같다. 타인의 비밀들로 마음이 무거워져 내 비밀까지 굳이 만들 여유가 없기 때문일까. 내가 견딜 수 있는 무게는 따로 있을 테니.
그때, 특정한 시기, 특정한 장소에서의 내 마음, 생각 그게 내 비밀의 전부라면 전부일 텐데. 남들이 알면 절대 안 되는 마음이나 생각 같은 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내 생각이나 마음을 다른 사람에게 좀처럼 잘 얘기하질 않으니 그럼 그건 다 소소한 비밀인가 싶기도 하고.
논 뷰 카페를 처음 가봤다. 한강 뷰, 바다 뷰 카페는 많이 가봤지만, 논 뷰 카페는 처음이었는데 너무 좋았다. 넓-게 펼쳐진 논은 서울에선 절대 쉽게 볼 수 없는 풍경이다. 푸른 하늘과 맞닿은 쭉 펼쳐있는 논.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고흐의 '정오의 휴식'이 떠오르기도 하고,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이 눈앞에 그려지기도 했다. 파란 하늘과 푸른 바다의 지평선이 이어지는 바다 뷰와는 또 다른 파랑파랑 초록초록한 매력이 있었다.
가만히 보고만 있어도 머리가 절로 맑아지는 느낌.
캠핑의자를 샀다. 봄이나 가을처럼 날씨가 좋은 계절에 피크닉 가는 걸 좋아한다. 그때는 항상 돗자리와 함께였다. 돗자리는 무거운 짐을 올려놓지 않으면 바람에 날아가 버리거나, 양반다리로 오래 앉아있는 게 썩 편하진 않지만 또 그 특유의 맛이 있다. 요즈음 한강 같은 곳엔 피크닉 세트 대여가 시간별로 저렴하게 가능해서 맨손으로 가는 피크닉도 가능하다.
그런데 논 뷰 카페를 갔다 와서 갑자기 캠핑의자를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든 마음에 드는 풍경이 있으면 그 자리에 앉아 가만히 감상하기에는 돗자리는 그리 적절하지 않았다. 한쪽 어깨에 의자를 둘러 매고 다니다가 어디든 훌쩍 펼쳐 앉거나 차 트렁크에 실어두고 다니다 필요한 순간에 꺼내면 될 것 같았다.
고민하다 캠핑의자를 찾아봤다. 낚시용, 캠핑용 등 용도도 모양도 가격도 접는 방식도 모두 제각각이라 고민이 됐다. 그중에서 나는 등받이가 높고 기댔을 때 머리에 쿠션감이 있는 제품으로 골랐다. 접었다 피는 것도 쉬웠다. 원통형으로 접혀 가방에 넣으면 어깨에 둘러 매고 다닐 수 있었다. 방수 천에 무게도 그리 무겁지 않았고, 의자 옆에 주머니도 달려 있어 핸드폰 등을 수납할 수도 있었다. 캠핑의자를 하나 샀을 뿐인데 엄청나게 자유로운 여행자라도 된 것마냥 마음이 부풀었다.
요즘 일교차가 커지고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져서 그런지 부쩍 샤부샤부 같은 국물 요리가 땡긴다. 된장 베이스의 버섯 샤부샤부를 끓여 먹고 2차로 칼국수면을 넣어 걸쭉하게 즐겼다. 3차로는 땅콩버터 한 숟갈과 계란 하나를 풀어 죽까지 야무지게 먹었다. 3차로 먹는 죽은 아무리 배가 불러도 계속 손이 가는 맛이다.
버섯 샤부샤부가 훠궈나 마라탕은 아니지만, 건더기를 즈마장에 찍어 먹으면 정말 맛있다. 즈마장은 땅콩버터, 간장, 다진 마늘을 넣고 설탕과 물을 조금 섞어 배합해 주면 된다. 알싸한 마늘과 고소하면서 묵직한 땅콩버터의 맛이 정말 잘 어울린다. 식초와 간장만 섞은 소스에 찍어먹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매력이 있다.
그렇게 충실히 먹은 바로 다음날 또 다시마를 우린 물에 쯔유와 맛술을 넣어 스키야끼를 끓여 먹었다. 2차는 조금 남은 국물에 우동면과 후리카케를 넣어 끓여 먹고 3차로 건더기를 열심히 찍어먹다 보니 자연히 국물이 섞인 계란 물로 계란찜을 만들어 먹었다. 너무 맛있고 배부르고 만족스러웠다. 오늘은 알배기 배추를 사서 밀푀유 나베를 끓여 먹을까. 얼른 장을 보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