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한 게 미덕인 세상이다. 쿨하지 못해 미안해, 라는 노래가 있을 만큼. 이제는 쿨하지 못하면 사과까지 해야하는 건가. 쿨한 건 다소 정 없어 보일지 몰라도 여러모로 좋은 점도 있다. 구질구질하지 않고, 깔끔하고, 간단하고, 편리하다. 맺고 끊음에 있어 구구절절 많은 말은 필요하지 않다. 그냥 한마디로 끝.
매사에 과하게 열정적이며 지나치게 뜨겁고 질척이는 것보다야 쿨-한게 좋아 보인다. 아니, 뭐랄까. 부작용이 적다. 하지만 자칫 쿨하지 못해 열정 과다로 뜨거워져 버리면,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의 부작용도 훨씬 크게 오기 때문에 감수하고 부담해야 할 짐의 무게도 커진다. 작용이 강하면 반작용도 강한 건 당연한 물리 법칙이 아니던가. 미는 힘이 강하면 반대로 튕겨져 나갈 위험도 크듯이 애초에 힘을 크게 주지 않고 있으면 그냥 그 위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수 있다. 한 자리에 온전히 머물 수 있다는 것은 큰 안정감을 준다. 이런 안온함이 미덕인 세상에서 쿨함은 필수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종종 이런 시종일관 쿨-한 태도의 사람들을 참을 수 없는 순간이 있다.
쿨하지 말아야 할 순간에도 쿨한 사람들. 뭐든지 '쿨' 하나로 퉁쳐버리는 순간들. 한 발 빠져있는 게 쿨한 걸 의미하는 건 아닌데 말야. 이상하게 왜곡되고 곡해된 각종 쿨이 난무한다. 쿨한 건 세련되고 합리적인 태도고 그렇지 못하면 감성충, 진지충으로 낙인 찍히기 십상이다.
진지함을 참을 수 없는 사회가 서글프다. 좀 더 긴 호흡으로 생각하고 표현하는 것이 어려워진 요즘, '진지 알레르기'처럼 현대 사회에 신종 알레르기라도 생긴걸까. 조금만 진지해져도 따분하고 지루하다는 태도가 수반된다. 감성충이세요? 진지충이세요? 공감충이세요? 하며 감성적 혹은 감상적 태도를 거부하는 태도. 감성, 진지, 공감 옆에 붙은 벌레 충(蟲). 반대로 매사에 공감을 못하는 사람에게 "너 T야?"라고 면박 주듯 묻는 게 확산되면서 하나의 밈처럼 되긴 했지만, 그냥 웃어 넘기던 얘기가 씁쓸해진다.
우리는 모두 찌질한 것, 날 것의 감성을 견딜 수 있는 맷집을 좀 더 키워야 한다.
오죽하면 쿨병 걸린 사람들은 쿨 몽둥이로 맞아야 한다는 말까지 있을까. 그래, 쿨병. 맞다. 그들의 쿨은 일종의 방어기제니까. 최소한의 예의와 배려가 결여된 태도가 '쿨'로 포장될 수 없듯 회피와 자기방어를 위한 방어기제 역시 쿨로 둔갑할 수 없다.
그건 쿨한 게 아니라 무례한거야. 그건 쿨한 게 아니라 감정이 메마른 거야. 그건 성숙한 게 아니라 오히려 미성숙한거야. 그렇게 팩트를 쏘아주고 싶다.
쿨하지 못한 건 미안한 게 아니다. 그럴 수 있다. 쿨하지 못하다는 건, 그만큼 진심이었다는 거니까. 오히려 쿨함을 강요하는 게 더 나쁘다.
나는 되려 지나친 쿨함을 경계한다. 그게 내 감수성을 무뎌지게 하기 때문이다. 20대 때 쓴 글을 읽어보면 지금이랑 문체부터가 다르다. 훨씬 더 감상적이랄까. 근데 그땐 또 그게 내 감수성이었겠지. 이런 일 저런 일 겪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변한 것도 있겠지만……더이상의 온도를 잃고 싶지 않다.
나는 언제까지나 쿨보다는 핫한 사람이고 싶다. 차갑기 보다는 따뜻한 쪽이 좋다. 열정적이고 의욕 넘치고 뭐든 진심을 쏟아서 하는. 그래서 좌절도 실망도 많이 하고 좀처럼 그 고통으로부터 무뎌지지 않는 사람. 끊임없이 온도를 잃어가다 결국 차가워지는 것보다 냉탕 온탕 오가서 힘들고 혼란스럽더라도 따뜻할 줄 아는 인간이고 싶다. 일시적으로 차가워지더라도 금세 따뜻한 온도를 회복하는, 원래 물성은 따뜻한, 아니, 뜨거운 사람.
쿨은 얼어죽을 놈의 쿨. 그냥 나는 영원히 뜨겁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