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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Oct 09. 2021

창 밖으로 널 닮은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고


어, 뭐지? 

그랬다


아니 사실 그냥

멍 - 하게 있다가



아, 내가 너무 피곤해서 이젠 헛 것이 보이는구나


진짜 그랬다




우리가 이 혼잡한 도시에서 마주칠 이유는


정말 없으니까,




그런데 '너 같은' 사람이 점점 가까워지다가

'네가 분명'한 사람이 걸어오더니


슉, 하고

빠르게

내 옆을 지나쳤다




나는 그제야 정신 차려

버스 창 옆을 스쳐가는 너를

구차하고 찌질하게


뒤돌아 보았다




나는 계속 네 뒷모습을 봤다


최대한 집중해서

'대충' 봤다




너의 걸음걸이,


너의 등,


너의 다리,


너의 머리카락,


너의


너의


너의,




그리고 나는 조금 슬펐다




그게 네가 맞아서,

나는 슬펐다






그렇게 내 옆을 스쳐 지나간 게 너였다는게

서울에 있을 리 없는 네가

서울을 지나간다는 게

그것도 내가 탄 버스 옆을 지나간다는 게

하필 그걸 내가 봤다는 게


그 시간 그곳에서 버스를 타고 있는 내가 있었고

그곳 그 시간에 내 창 옆을 지나는 네가 있었다고

마침 버스는 꽉 막힌 도로 때문에 멈춰있었다는 게


나는 슬펐다


네가 나를 봤을지도 모른다는 게

봐도 인사 조차 건네지 못하고 싸늘하게 앞만 보고 지나쳐야 한다는 게

우리가 이렇게 이 넓은 서울에서 마주친 게

처음이 아니라는 게

하필 네 생각을 이따금 하고 있는 시점에 이렇게 얼굴을 본 게

너를 봐도 제법 담담하다는 게


나는 슬펐다




하지만 눈물은 나지 않았다

울었던 기억은 없다



그냥 그저,

'어, 쟤가 여기 왜 있지?'


이런 생각이 잠시 들었을 뿐




그리고 명절 연휴에 집 앞을 지나면서


'너'로 보이는 실루엣이

서있는 걸 얼핏 봤다


아니, 봤지만 정확히 보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고

얼굴을 제대로 보는 것에 성공적으로 실패했다


다행이었다




아빠 차를 타고 드라이브하는 길에


너를 또 봤다



얼굴, 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이번에는 보고 말았다


정확히, 봤다



눈이 마주치지는 않았다


다행이다




그렇게 아빠 차 안에서 너를 봤다


아빠한테


"아빠, 00이다"


라고 말하면서,



"어, 그러네"


라는 아빠의 대답을 들으면서



또 조금 슬펐다




왜 우리 동네에 네가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어떤 약속이 있었는지

어떤 이유에선지


그런 건 하나도 모르지만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짧은 기간 동안 너를 여러 번 봤다



친구는 네가 요즘 그 애 생각을 많이 했나 보다,

했다


그런 말은 별로 듣고 싶지가 않았다



인연이니 우연이니 하는 말도


전혀 쓰고 싶지가 않았다




나는 괜히 쓸데없는 미안한 감정을 느끼면서

애써 그 말을 넘겼다


울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네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어떤 상황에서든 너는 너대로 또


열심히 살길


나는 진심으로 빌었다




나를 응원하듯이


너를 응원했다



그렇게,

그런 방식으로




이것저것 생각해보니

나는 또 미안해져서


가슴속으로 모든 감정들을 그저

꾹, 꾹, 눌렀다




오만한 나의 마음,

이런 마음



너는 정말 착한 사람인데,

정말 좋은 사람인데


나는 너무 나쁘다




좋은 기억, 없을 수도 있지



감정이든 기억이든

미치도록 강렬했던 찰나의 순간들이

희석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나를 돌이켜봤을 때,


그럴 수 있을 것도 같기도 하고

절대 그럴 수 없을 것도 같다




네가 나와 같지 않길 바란다



어쨌든,

네가 잘 살길




웃으면서 행복하게 그렇게 잘 살았으면




진심은 오래 남는 법이니까

진심을 나눈 순간은 후회하지 않는 법이니까


너는, 나를 그렇게


잘 정리했을 것이다




나처럼,



아니 나보다 훨씬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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