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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재이 May 05. 2021

화분



    화분을 버렸다. 집에 들인지 2년 만이었다. 적도 아프리카에 자생하는 놀리나아과 식물의 다육식물 중 하나로, “키우기 쉬운 식물 추천”과 같은 검색어로 검색했을 때 항상 상위에 랭크되는 식물 중 하나다. 경작이 ‘매우’ 쉬운 편에 속한다는 이 식물은 토양, 빛의 세기, 물의 양과 관계없이 번성한다고 되어있는데, 물을 많이 주지 않은 상태에서도 추운 환경과 따뜻한 환경을 날 수 있다니 정말 마법의 식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 식물의 풍성하던 줄기를 하나 남기고 다 죽여버린 나는, 난, 정말이지, 후.

    이게 빨리 죽기를 바랐을지도 모르지. 어서 내 방에서 치워버리고 싶었을지도.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냥 방치해두고 그 끈질긴 생명력을 원망하면서.

    언제 죽니, 대체 언제 죽을 작정이야, 물을 안 주는데도 어떻게 이렇게 살아있을 수 있는 거야? 메커니즘이 도대체 어떤 식으로 구성되면 이럴 수 있는 건데? 끊임없이 외치다 나중에는 원망이 경이로움으로 바뀔 정도였다.






    정말이지 이 식물의 생명력은 놀라웠다. 물 한 방울 없이도, 햇빛이 없어도, 더위에도, 추위에도 꿋꿋이 견뎌내었다.

    결국, 그럼에도 그럼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끝은 온다. 나의 지속적인 무관심과 의도적인 불친절함으로 인해서 잎이 한 가닥, 한 가닥 노랗게 말라 비틀어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 가닥을 남겨둔 채, 그렇게 그 화분은 죽어갔다. 제법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마지막 한 가닥이 절대 죽지 않았다. 서서히 스스로 죽어가도록 내버려 두려고 했으나 끝끝내 그 한 가닥만큼은 보란 듯이 살아서 생생한 초록빛을 뽐내고 있었다.

    결국, 내가 졌다. 다 죽을 때까지 기다리기를 포기하고 그냥 내다 버리기로 한 것이다. 살아남은 한 가닥은 내 마음 한편에 자리한 채 끝끝내 뽑히지 않은 ‘너’ 같았기 때문에, 화분을 내다 버리면서 나는 통쾌함 내지 해방감 따위와 비슷한 모종의 짜릿함을 느꼈다.

    화분이 사라지면 이제 내 공간에서 너를 떠올릴 만한 것은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만으로도 나는 조금쯤 더 안락해지고 평온해지고 주체적인 존재가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만족스러웠다.

“공기 정화에 좋은 식물이래. 귀엽지?”

    네모나게 각진 돌 화분에 통통하고 싱그러운 식물의 줄기가 초록빛을 뿜고 있었다. 화분 안에는 자갈 몇 개와 아주 작은 소라도 들어 있었다.

“스투키야.”

    네가 사준 스투키.

뭐든 살아있는 ‘생물’을 들인다는 건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그것이 내 마음속의 방이든 진짜 내 방이든.

    아무렇게 방치해 놔도 자기가 알아서 잘 자란다고 하지만,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서 적당한 밝기가 있는 곳에 놓아두고, 물도 간간이 주면서 최선을 다해 그 식물을 돌보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결국엔 이렇게 내다 버리게 되었다.

    꼬박 2년이 걸렸구나. 이 작은 화분 하나 버리는데, 2년. 너를 내 마음속에서 놓아주는 데 걸린 시간이다.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그렇게 생각한다.

    화분을 들고 계단을 내려가는데 마지막 남은 한 가닥의 줄기가 얕은 뿌리 탓에 간당간당 흔들거렸다. 손으로 살짝만 건드려도 톡 하고 옆으로 쓰러지거나,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전혀 힘 안 들이고 살짝만 집어도 쏙하고 빠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그래, 끝까지 버티고 있던 너에 대한 기억들도 언젠가 이렇게 너무도 쉽게 뿌리 뽑힐 나약한 것들에 불과한 거였어. 그런 거야. 나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좀 더 일찍 내다 버릴 걸, 싶었다. 내다 버리는 건 어차피 내 맘인데. 쉽게, 너무 쉽게 이렇게 그냥 버리면 되는 건데. 어리석게 왜 그랬던 걸까, 바보같이.






    화분을 버렸다. 아무리 키우기가 쉬운 식물도 주인이 키울 의지가 없으면, 죽기 마련이다. 불로장생의 식물이란 없듯이 영원한 기억이란 것도 없는 것이다.

    기억에 색을 입혀 ‘추억’으로 가두는 것도 미련한 짓이다. 그럴 필요 없어. 상처도 마음도 미련도 그냥 다 날려 보내자. 화분의 흙을 쏟으면서 나는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는 화분 같은 건 덜컥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빈 화분을 보니 생각보다 깊고 커서 놀랐다. 이렇게 깊었었나, 작다고만 생각했었는데. 너를 담았던 내 마음의 깊이도 얼마나 깊었을까. 그 공간이 얼마나 크게 느껴질까. 상실의 깊이를 감히 짐작할 수가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관련된 문제의 단점은 닥쳐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마음의 문제.

    어찌 됐든, 화분은 이제 ‘비어있음’으로써 어떠한 식물도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기르기 힘든 식물이라 할지라도 뭐든 그 안에 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정성 들여 돌본다면 적어도 죽지는 않을 것이다.

    나 역시도 이제야 비로소 내 마음의 화분에 다른 누군가를 담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누구든, 나는 사랑으로 기꺼이 그를 받아들이고, 정성 들여 관심을 쏟아, 마지막에는 아름답고 찬란하게 꽃피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아주 조용히, 조금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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