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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 or Learn

내 영원한 인생영화, 'The Lion King'

by 이재이



나에게 '인생영화'가 뭐냐고 물으면, 항상 1초만에 대답한다. '라이온킹'이라고.


어렸을 때 우리 집엔 디즈니 비디오 세트가 있었다. 한국어 더빙판이 아니라 오리지널 버전에 자막이 나오는, 근데 자막이 있긴 했어도 다 영문 자막이었다 흑흑. 나는 어렸을 때 부터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또 보고 하는 걸 참 좋아했는데 신데렐라, 백설공주, 인어공주 같은 공주 시리즈는 여러 번 보다보니 질렸다. 포카혼타스는 노래가 그렇게 꽂히지 않았고, 101마리 강아지는 크루엘라가 너무 무..서웠다...결국 이런저런 이유로 내 최애는 라이온킹이 되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도 그저 들리는 대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보던 5살 때부터, 대사의 의미를 알게 되고 곱씹을수록 더 감동을 받았던 학창시절을 거쳐 20대, 30대까지도 여전히 내 인생영화는 변함없이 '라이온킹'이다. 새로운 영화들이 겹겹이 쌓여도 끝내 임팩트가 사라지고, 순위는 변치 않는다.


결국, 부동의 1위는 라이온킹.






오랜만에 또 라이온킹을 봤다. 지금까지 수십번도 넘게 봤는데, 50번을 보면 50번 다 우는 영화다.


절벽에서 떨어져 죽은 무파사의 팔 안으로 파고드는 심바를 보면서 울고, "Remember..."이라고 하며 멀어지는 무파사를 보며 울고 이렇게 클리셰처럼 늘 우는 부분이 있었는데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다보니 이제 안 울던 부분에서도 죄다 울어버린다. 나이가 들면 눈물이 많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나보다.


이제와 다시보니 심바는 엄청한 회피형이었는데, 이런 회피형 심바의 머리를 망치로 땡! 하고 때리듯 라피키는 말 한마디로 각성시켜 버린다.(아, 생각해보니 실제로 이상한 지팡이로 머리를 때리기도 했다.)


고향을 떠나 너무 멀리 와버린 심바가 다시 과거를 마주하고 돌아가기를 두려워 할 때 라피키는 말한다.


"The past can hurt. But, you can either run from it, or learn from it."


과거는 상처가 될 수 있지만, 너는 그것으로부터 도망칠수도 있고 교훈을 얻을 수도 있다. 캬-.






도망치거나 혹은 배우거나!


이 말 한마디에 정신을 차린 심바는 고향인 프라이드락으로 돌아 가기로 결심하고, 라피키는 크게 소리를 지르며 그가 돌아 간다고 환호한다. 그러면서 뒤에 깔리는 음악이 아주 가슴을 웅장하게 한다. 근데 이상하게 눈물이 났다. 과거의 상처를 마주할 마음을 먹고 들판을 달려가는 심바. 그 용기. 그 뒤에서 지팡이를 들고 "go on!"이라고 크게 소리치며 계속 가라고 하는 라피키.


후회와 상처로 점철된 과거. 과거에 이미 벌어진 일은 돌이킬 수 없다. 이미 지난 일이니까. 그렇다 할 지라도 그 과거를 그저 덮어두고 도망쳐 버릴지, 그 과거로부터 무언가를 배울지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 과거를 직시하는 데 얼마나 큰 고통이 따를지 감히 가늠할 수 없다 해도, 그래서 너무 두렵다 해도 결국 그 상처를 찬찬히 되짚어 보고, 그 안에서 깨달음을 얻어야 한다. 그렇게 잘 소화된 고통은 앞으로의 삶을 살아 가는 데에 크나 큰 자양분이 된다. 그 과정에서 성장이 이루어지니까.


언제까지나 도망칠 수는 없는 법. 용기를 내어 아프고, 고통스럽고, 참을 수 없는 과거를 직면해야 한다. 내 과거를 온전히 내가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진정한 치유와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나저나 오랜만에 다시 보니 티몬과 품바는 왜 이렇게 귀엽고 노래는 또 왜 이리도 좋은지. 별 수 있나, 하루종일 OST를 들으며 짙은 여운을 만끽하는 수밖에. 다시 도져버린 지독한 라이온킹 후유증. 한동안 '나~즈웬냐~'로 시작하는 'Circle of Life'로 아침을 열고, 'Can You Feel The Love Tonight'를 들으며 샤워를 하고, '하쿠나마타타'와 'The Lion Sleeps Tonight' 를 들으며 산책을 하겠지. 어휴, 지긋지긋해(하지만 익숙해).



앞으로의 내가 'Run'과 'Learn' 두 가지 선택지 중에서 용기를 내어 담대하게 'Learn'을 택할 수 있기를. 매순간 'Learn'을 택하지 못하고 때때로 'Run'과 'Learn' 사이에서 방황하더라도 그 시간이 너무 길지 않기를. 너무 감당하기 어려워 간혹 'Run' 하더라도 결국엔 'Learn'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홍제천을 'Runnig' 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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