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얘기를 엿들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애초에 딱히 관심도 없었지만, 카페 내부가 그리 넓지 않은 탓에 옆 테이블에 앉은 남자들의 얘기가 너무 잘 들렸다. 내가 마치 그들의 일행이기라도 한 것처럼.
"너네 둘이 사귄다고는 들었는데. 결혼? 와, 난 너랑 걔가 그 정도 인지는 몰랐어."
-그 정도?
"그러니까 결혼을 생각할 정도."
-아, 뭐 처음엔 생각 없긴 했지.
"그니까, 그렇게 진지하게 만나는 줄은 몰랐는데."
그 정도. 결혼을 전제할 정도. 사귀는 사이에 정도가 정해져 있나. 진지하게 사랑하는 관계. 가볍지 않은 관계. 그럼 진지하지 않은 관계는 또 뭔가. 그런 만남도 있단 말인가.
정말로 적당히-를 유지하는 그 '정도'를 조절할 수 있는 관계가 있단 말인가. 그게 자유자재로 막 그렇게 조절이 되나.
나이가 들어도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바로 이런 부분이다. 아니 '그 정도'면 애초에 굳이 왜 사귀는 걸까. 외로워서? 삶이 무료해서? 아니면 그냥 심심해서? 심심한 사람들이 심심한 연애를 하면 좀 덜 심심해지나. 더 심심해져 버릴 것 같은데.
정도껏 사랑하기.
아무리 생각해도 영 와닿지 않는다. 좀 강하게 말하면 말도 안 되는 소리 같다. 아예 단념하고서 마음을 정리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몰라도 정도껏 사랑하는 건 나는 정말 하지 못한다. 연애할 사람과 결혼할 사람을 구분 지어 서로 다른 카테고리에 분류하고선 이 사람은 연애 상대로는 참 괜찮은데 결혼은 진짜 아냐, 따위의 말을 하면서 만남을 지속하는 일도 절대 하지 못한다.
자기 마음이 그 정도라면, 얼른 그 사람을 놓아주어야 그 사람도 결혼할 사람 만나서 연애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반드시 오를 주식만을 사는 사람이 있을 수 없듯, 연애도 그런 거 아닌가. 분산투자라는 게 존재할 수가 있나. (아 물론, 양다리 걸치는 사람들은 분산투자를 충실히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이긴 하다.) 나에겐 오로지 전량매수와 전량매도뿐이다. 주식이 폭락하듯 마음이 한없이 가난해져 텅 비어버린다 해도, 그래서 팔았을 때 남기는커녕 마이너스가 된다고 해도 애초에 한 곳에 다 때려 붓고 풀 매수한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고, 내가 스스로 한 선택이니 내가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얘랑은 결혼은 아니고 딱, 연애까지만. 이렇게 어느 정도에서 멈추고 마음을 나눈다는 건 마음을 '계산'한다는 건데. 사랑과 계산이라는 개념은 영 어울리지 않는다. 사랑에 계산이 끼어들고 개입하면서부터는 더 이상 사랑이 아닌 게 되어버리는 거 아닐까. 사랑이 무슨 거래도 아니고.
나는 아직도 연애 따로, 결혼 따로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겠다. 결혼하고 싶지 않은 사람과 어떻게 연애는 하고 싶은지, 정말 모르겠다. 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연애 상대로도 매력적이던데.
"너 진짜 아직도 모르겠어? 어리지도 않잖아."
그렇게 나를 타박한대도 나는 답답한 소리를 하면서 여전히 모르겠다는 말만 반복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마 영영 모를지도. 굳이 알고 싶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