덥지도 않은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이거라도 먹으면 그나마 좀 여름이라고 느낄 수 있을까 싶어서. 밖에는 비가 억세게 쏟아붓고 있었다. 9월이 오고도 아직은 낮에 꽤 더운 탓에 여름이 완전히 갔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았는데, 비가 내려서인지 기온이 눈에 띄게 떨어져 버렸다. 정말 여름이 이제 아예 가버린 걸까.
이번 해에는 여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엄청 더웠던 것도 같은데 돌이켜 보면 에어컨 밑에서 벌벌 떨었던 기억밖엔 없는 것 같고. 이러나저러나 올해의 여름도 훅, 가버렸다는 생각에 못내 아쉬워 괜히 김애란의 '바깥은 여름'을 집어 들었다.
몇 번은 읽었던 책이라 처음부터 술술 읽는데, '풍경의 쓸모'에 웃긴 내용이 나와 잠시 멈췄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주인공은 교수들과의 술자리에서 대학생들 얘기를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참 남의 얘기 열심히 듣는 나이인 거 같아."
선생 대우 해주느라 듣는 척하는지는 몰라도 똑같은 얘기를 들어도 더 열심히 지겨워하고 더 열심히 저항한다며. 모든 얘기를 느슨하게 듣는 자신과는 다르다고.
"그게 젊음이지. 어른이 별 건가. 지가 좋아하지 않는 인간 하고도 잘 지내는 게 어른이지. 호오(好惡)가 아니라 의무지. 몫과 역을 해낸다고 생각하면 되는데……(중략)"
그러니까 어른이란 듣기 싫은 얘기도 지루한 티 안 내고 적당히 심드렁하게 잘 들으면서, 싫은 사람이랑도 잘 지내는 일종의 '역할극'을 수행하는 데 익숙해진 사람인 셈인가.
'남의 얘기를 열심히 듣는 게 젊음이다'는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는 재미있는 표현 같다. 나 역시 20대 때와 30대 때의 가장 큰 차이를 꼽으라면 단연 '내가 모르는 영역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남겨두는 것'이라고 답할 것이다. 온전한 0%와 100%라는 건 없다는 걸 인정하고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 거기서 나오는 일종의 여유랄까. 그걸 자연스레 알게 되는 게 나이 드는 과정 아닐까.
나와 다른 사람도, 정반대의 의견을 가진 사람의 얘기도 그럴 수 있나 보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라는 태도로 느슨하게 들어 넘길 줄 아는 태도. 거세게 반발하거나 열심히 저항하거나 지루한 티를 역력히 드러내지 않고 적당히 무심한 태도를 유지할 줄 아는 것. 그것이 일종의 '젊음'과 대척점에 있는 감각이라니.
책의 표현을 빌리면 그런 '어느 화제든 상대의 진심도, 대가도 요구하지 않는 태도가 담백하고 노련'하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어른'의 태도인가. 어떠한 기대도 없는 태도. 그런 건 적어도 상대에게 어떤 '부담'을 주진 않기 때문에 얼핏 세련된 인상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세심히 들여다보면 그건 결국, 타인이야 어떻든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태도고, 일방적 소통의 방식이다.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면서 태도가 바뀌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자연스럽고도 당연하다. 모든 얘기를 너무 진심으로, 열심히, 이입해서 듣다 보면 너무너무 피곤한 일이 많이 생기니까. 그러니 그냥 적당히 흘려듣고 적당히 걸러 듣고 그러는 거다. 밉상이라 도무지 정을 주기 힘든 사람이랑도 같이 일해야 하는 상황은 필연적으로 오는데 그때마다 스트레스 받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러다 보면 내가 더 피곤해지니까 그냥 이걸 하나의 '역할'이자 내 '몫'이라 치부하는 게 맘 편하다는 건 모든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남의 얘기를 좀 덜 열심히 듣고, 타인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 맡은 바를 이행하면 그만인 역할극을 충실히 수행하면서 '어른'이 되어간다.
새로울 것도 없는데, 왜 이렇게 씁쓸하지.
인간은 외로울 때 추위를 더 잘 느낀다는데, 비가 와서 추워진 걸까. 아까보다 확실히 더 쌀쌀해진 것 같은데. 여름의 끝자락이라도 붙들고 싶은 심정으로 집어든 '바깥은 여름'을 읽다가, 아이스크림을 먹었을 때보다 더 추워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