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사실 그때 만나는 사람 있었어."
나는 뒤통수를 제대로 맞은듯 얼얼한 감각을 실제로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가 너 왜 만난 줄 알아?"
나는 충격에 모든 신경이 마비가 되었는지 아니면 그 당당함에 하도 어이가 없어 대꾸할 의지가 사라졌는지,
아무 대답도 않고 그저 그 말이 멋대로 공기를 채우도록 내버려두고 있었다.
"질리고 싶어서."
"뭐?"
그제야 거의 반사적으로 짧은 물음이 터져나왔다.
"제대로 질리고 싶어서."
너는 분명히 말했다.
"근데 내가 틀렸어. 완전히 실패야. 어쩌면 그 전보다 더 나빠졌어. 나는 영영 이렇게 포기하지 못한 채로 살게 될거야."
웃기고자빠졌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내가 경솔했어. 너무 섣불리 자만했나봐."
"어디까지 할 거니?"
하지만 너는 나를 신경쓰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질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지쳐버릴 거라고 거의 확신했어. 근데 다 틀렸어. 나 멍청한가 봐."
나는 너무 슬퍼졌다.
네가 스스로를 자책할수록 나는 더욱 비참해졌다.
"어차피 이런 사과는 이미 아무 의미도 없겠지만, 어쨌든 미안해."
어쨌든 미안해, 미안한 이유가 중요할까 아니면 어쨌든 미안하다는 그 사실이 중요할까 아니면 저 말이 물리적으로 내 귀에 들어온다는 사실이 중요할까.
나는 순간 어지러움을 느꼈다.
어쨌든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
공명처럼 그 소리가 계속 울렸다.
숨을 고르고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무난하고도 예의있는 말을 꺼냈다.
잘 살아,
잘.
그 과정에 대해서 나는 철저히 모를거야.
그러니 충분히 잘, 살아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