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더더욱
회색으로 물들었지.
어두운 잿빛이 드리웠지.
사옥 10층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면서
나는 따뜻한 커피가 한 잔 마시고 싶어졌어.
하지만
마시지 않았지.
따뜻한 걸 마시면
기어코 네 생각이 나버릴 것 같아서.
나는 그저 차가운 유리창에
흔적을 남기고 사라지는
빗방울들을 바라만보고 있었어.
비를 맞아 더욱 진해진 아스팔트의 색감과
물에 젖은 나무들을 보고 있었어
우산을 쓴 사람들이
거리를 바쁘게 수놓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었어.
회색 도시가
더욱 진한 잿빛으로 물드는 걸
그렇게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면서
너와 내 관계도
이렇게 하나의 막 뒤에서
덤덤하게
관망할 수 있었다면
달랐을까,
생각했어.
부질없는
멍청한 회색빛 생각을
그저 그렇게 했어.
비를 쫄딱 맞으며
빗속을 헤치고 거리를 활보하는 게 아니라,
정신 차리고
이렇게 건물의 유리창에서
비오는 풍경을 바라볼 수 있다면,
그럼 이 무거운 회색 구름도
잿빛 도시도
아름다운 '풍경'이 되듯이,
그저 이렇게 '감상'할 수 있듯이.
나는 여기까지 생각하고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시고
정신을 차렸지 뭐야.
커피 맛은
굳이 표현하자면,
이도 저도 아닌
'회색'
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