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이 Nov 12. 2021

어떤 표정으로 너를 맞아야 할까



오랜만에 보는 너를

어떤 표정으로 맞아야 하나,


나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환하고

밝게 웃어야하나,

하지만 그건 필연 어색한 미소 따위로 변질되리라.


결국

아무 표정도 짓지 않기로 했다.


'무표정'



'무(無)'표정.


무표정은 정말

아무것도 '無'한가?

어떠한 의미도 의지도 '無'한

표정이란 게 있을 수 있나.


최대한 '無'표정을 짓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 '아무 표정도 짓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표정'을

짓고 앉아 있었고,

그것은 너에게 어떤 인상을 남겼겠지.


네가 나에게

어떤 잔상을 남겨 주었듯이.



너도 굳이 말하자면

무표정에 가까웠다.


다만,

눈빛이.



그 눈빛은

결코 '무(無)'가 아니었지.


애정어린 눈빛.


시종일관 나를 그렇게 쳐다봤었지.


아무 표정도 짓고 있지 않았지만

눈은 그렇지 않았다.



나 역시 너를 그렇게

애정이 담긴 눈으로 쳐다봤으리라.


비록 나는

무표정을 지으려 노력하고 있었지만,

눈은 그 의지를 배신했으리라.



너를 차갑게

정말 '남'을 보듯이 보는 것 따위

나는 하지 못하니까.


연기에는 더더욱

재능이 없으니까.


부질없는 가면 따위 벗고

눈만은 거짓을 표하지 못했으리라.



우리가 

서로

애정 어린 눈빛과

냉담한 표정이 뒤섞인 

모순적인 얼굴로

마주보고 앉아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었을 때,


나는 진실로

현실감을 상실했다.



이런 일 정말

있을 줄 몰랐는데.




이게 현실인가?




너의 눈을

쳐다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었다.



너를 믿어,

너를 응원해,

잘 해왔어,

네가 대견해,

넌 항상 열심히 살지,

넌 그런 아이야,

앞으로도 넌 잘 할거야,

우리 열심히 살자,

우리 행복하자,


그런 모든 말이

가슴으로 날아와 꽂히는 듯했다.


아무도 연필을 들진 않았지만

무수히 많은 글씨가 새겨졌다.



잘 살아.


마지막에 네 눈이 그렇게 말하는 듯 했고

나 역시 속으로 그렇게 말하며

악수를 건넸다.


너는 두 팔을 벌렸고

나를 안았지.


네 품에 안겼을 때

비로소 나는 실감했다.


이 모든 게 현실임을.


악수를 건네는 내게

두 팔을 벌릴 줄 아는,

담백한 포옹으로 인사를 대신할 줄 아는

멋진 남자가 되었구나.



너는

멋진 사람으로 성장했구나.



멋지구나.




우리는 이제 친구도 뭣도 아닌 사이고

이게 끝이고

이게 현실이다.




잘 살아,

이게 최선이다.



그렇게 짧은 포옹 후

돌아서는 길,

나는 울지 않았다.



하, 춥다 추워

그저 그렇게 생각하면서

씩씩하게 걸어갔다.



다만,

집에 도착해

내 방문을 열자

마침내 무너지듯이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고

그렇게 얼마 쯤

울고 나니 개운해졌다.



우리는 잘 살 것

이다.





정말 우연히

나-중에 시간이 흘러 만난다면

그땐 무표정이 아닌

환하게 웃는 얼굴로 너를 맞으리라.


그리고 아무 말 없이

그저 그렇게 한 번 웃고,

너를 스쳐 지나가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눈물을 그쳤다.



그걸로


끝이었다.




정말,


끝.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생각하는 진짜 '간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