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재이 Jan 15. 2022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모르는 번호로.

평소 모르는 번호라면 절대 받지 않지만 이번엔 왠지 받아야할 것 같았다.

여보세요, 하기가 무섭게 뚝 하고 끊겼다.

왜일까, 너라는 생각이 든 건.

아니, 어쩌면 그것은 확신.


그 짧은 몇 초로 내 하루는 어지럽혀졌다.

충분하구나, 찰나만으로도.


물론 네가 아닐 수도 있다.

누군가 8과 7을 잘못 눌러 내게 걸려온 전화일 수도 있다.

그런데도 나는 왜 하루종일

이 의미없는 전화를 떨쳐내지 못하고 있을까.


만일 너라면,

그게 진짜 너였다면

왜 그냥 끊었을까.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전화를 건 것을 후회했을까.


나는 그제서야

“여보세요” 라고 했던

내 목소리가 어땠는지 되짚어보았으나,

좀처럼 기억나지 않았다.


너무 무거웠나,

아니 지나치게 무신경했나,

아님 퉁명스러웠나.


뭐가 됐든

상대는 대화를 원치 않았다.


한 마디도 주고 받지 못했는데

그게 더 큰 의미가 되어

기어이 내 하루를 어지럽히고야 말았다.



우리가,

제자리걸음을 걷는다고 생각해?

궤도를 이탈하지 못하고

빙빙 돈다고 생각해?

같은 궤도를

비잉 비잉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서로 놓지 못하는 이유가

라고 생각해?

아니 그런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


타당한 이유따위가 필요해?라고 너는 반문하겠지.

만약 네가 있었다면 말야.

우린 사소한 말다툼을 했겠지.

각자의 이유로 서운해했을테지.

질문과 설명과 질문을 반복하면서.



우린 이제 서로 그렇게 절실할 이유도 없는데,

나는 사소한 구실만 있으면

습관처럼 너를 떠올려.


이게 이유가 돼?



안 돼.



한번 더 전화가 걸려왔으면 했다.

그땐 전화를 받고서

아무말 없이 잠자코 있으리라 다짐했다.

내가 아무말 않고 있으면

수화기 저편에서 상대가 먼저

음음,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여보세요.”

하지 않을까,

그런 멍청한 생각을 했다.




다행히도

전화는 오지 않는다.




다행스럽다, 고 생각할 수 있어 다행이다.



하지만 나는.

사실 나는.






내 하루는 어지럽다 못해 엉망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손 안에 들어오는 하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