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맛이 나는 가을
아침과 밤은 가을인데, 한낮은 아직 여름인 요상한 나날이다.
점심을 먹고 회사 근처 공원 산책길을 걸었다.
평소에는 잠깐이라도 자기 위해 급하게 밥을 먹고 눈을 붙이곤 했는데, 오랜만에 습기를 머금은 흙길을 밟으니 낮잠과는 다른 개운함이 몰려든다.
순간, 무언가 작고 빠른 게 앞을 휙- 지나갔다.
청설모였다.
청설모가 제 얼굴보다 훨씬 큰 밤송이를 물고 내달렸다.
그런데....... 물고있는 밤송이가 초록색이다.
아직 여물려면 한참이 남아 보이는데, 녀석은 그걸 누군가에게 뺏기기라도 할 듯 내달리더니 멈추어 서서 사방을 살폈다. 하찮고 동시에 미칠 듯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하긴, 사람도 바싹 익힌 걸 좋아하기도 하고, 덜 익힌 걸 좋아하기도 하니까. 저 청설모도 가을 맛보다 여름 맛을 더 좋아하는 녀석일지도 모른다.
초록색 밤은 좀 더 아삭할까. 덜 여문 것 특유의 약간 떫으면서도 푸릇한 맛이 날 것 같다.
역시 산책을 나오길 잘했다. 두 계절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시기는 짧으니까.
청설모가 대롱대롱 물고있는 초록 밤송이에
여름과 가을이 모두 담겨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