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유는 빵과 치즈

이 맛에 살지!

by 어찌







“왜 사는지 모르겠어.”


친구는 음식에는 손도 대지 않은 채 한참을 한탄했다. 나는 굳어가는 크림파스타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호모 사피엔스 출연 이래 아무도 정답을 찾지 못한 ‘인류 존재 이유’의 물음에 답할 능력이 내게는 없기 때문이다. 따뜻한 파스타가 냉파스타가 되어가는 걸 보는 나를 바라보며 친구는 어이없다는 듯이 물었다. “너는 왜 살아?”

인류가 아니라 대상이 ‘나’로 좁혀진다면, 이건 대답할 수 있다.



“나는 요즘 식빵에 리코타 치즈 발라 먹으려고 살아.”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진로 고민을 하는 친구에게 적절한 대답은 아니었겠지만.




적어도 요즘 내 삶의 이유는 빵과 치즈를 먹기 위해서다. 언젠가는 냉파스타를 먹기 위해서나, 아침에 따뜻한 드립 커피를 내려 마시기 위해서로 바뀔 수도 있다. 겨울이 되면 전기장판을 틀고 따뜻하게 등을 지지며 잠들기 위해서가 될지도 모른다.


만약 ‘요즘 네 최대 고민은 뭐야?’라고 물었다면, 나도 진로 이야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꿈이 뭐야?’라고 물었다거나 ‘잘하고 싶은 게 뭐야?’라고 물었다면 다른 말을 꺼냈을 거다.


회사에 다닐 때는 ‘일잘러’가 되려고 매일 야근을 하고 관련 책을 읽으며 아등바등 애써보기도 했다. 지금의 나는 글을 쓰는 게 좋고, 마음에 쏙 드는 문장을 만들어 내는 순간의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언젠가 내 이름의 책을 낸다는 상상만으로도 떨리곤 한다.



하지만, 그것들이 사는 이유가 되지 않게 하려고 한다.



좋아하는 일이나 잘하고 싶은 일, 꿈. 바람은 내 소망이지 나 자신이 아니다.

나도 사는 이유를 찾아내려고 애썼던 때가 있었다. 내가 닿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일은 성취감과 활력을 주었다. 하지만, 그것을 더는 좋아하지 않게 되고, 내가 꿈꾸던 만큼 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 너무 쉽게 무너져 내리기도 하는 것이었다. 또,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꿈이 삶의 이유였을 때는, 가는 동안의 삶은 그저 버티는 시간이 되어버리곤 했다.


이렇듯 좋아하는 일, 잘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꿈이 삶의 이유였던 때,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쉽게 망가졌다. 깊게 소망했던 만큼 크게 흔들려서 다시 일어나는 데에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는 이유가 빵과 치즈가 되었을 때, 그 반복적인 편안함과 익숙하면서도 먹을 때마다 감탄하는 맛은 아주 굳건한 삶의 기둥이 되었다. 게다가 이 정도 사는 이유 정도는 언제든 만들어 낼 수 있으니까, 없어지더라도 얼마든지 새로운 삶의 이유를 만들고 살아갈 수 있다.



물론 당분간은 이 삶의 이유가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다. 씩씩거리며 하루를 마무리할 때, 냉동실에 넣어 두었던 식빵에 시원한 리코타 치즈를 듬뿍 얹어 먹는다. 입안에서 고소한 치즈와 꾸덕한 식빵을 꼭꼭 씹어 넘기면, 시원하고 묵직하게 차오르는 탄수화물이 위를 가득 채운다. 그 충만한 감각에 절로 화가 가라앉는다. 흐뭇한 미소가 절로 나온다.


“역시 이 맛에 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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