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맥시멀라이프가 아닌

이야기의 시작점 - '들임'의 멈춤

by 어찌


철저한 유물론자가 되어 마치 물건이 내 존재를 세상에 증명해 줄 것처럼 밤마다 벌건 눈으로 퍼런 핸드폰 화면을 보며 구매 버튼을 눌렀다. (...) 물건을 사면 살수록 내 세계는 쪼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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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랬던가.

- 물건을 많이 사봤으니까 미니멀라이프도 하는 거지!


모든 미니멀리스트가 그렇지는 않겠지만 일부에겐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물건을 들이고, 쌓고, 채우다 그만 지긋지긋해져 버려서 죄다 버리겠다고 선언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예를 들면, 안타깝게도, 나 같은 인간.

더욱 안타까운 점은, 나는 그 말의 일부에만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많이 사봤던'은 맞지만 '미니멀라이프'를 하지는 못했다. 장렬히 실패하고 말았다.

어쨌든 전직 맥시멀리스트였던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에, 그 반쪽짜리 이야기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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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돈벌이를 하기 전까지 내 수집욕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다이어리 꾸미기, 일명 '다꾸'에 빠져 각종 문구류를 (귀여운 수준으로) 쓸어 담았다. 여러 색의 펜, 같은 색이지만 다른 디자인의 펜, 같은 색과 디자인이지만 두께가 다른 펜, 같은 색과 디자인과 두께지만 잉크의 질감이 다른 펜을 사들였다. 비슷한 식으로 메모지, 랩핑지, 스탬프, 잉크, 끈과 비즈 등도 들였다.

부모님의 "너 죽으면 그것들 같이 묻기라도 할 거냐?"라는 타박에는 당당히 반박했다. "아니 이 예쁜 것들을 왜 묻어? 이 정도면 왕릉 정도는 만들어 줘야지!"

어떻게 이 종이의 영롱한 무늬와 질감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보기만 해도, 쓰다듬기만 해도 웃음이 났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오리고 접고 쓰다듬고 붙였다. 사들이는 속도를 못 따라가긴 했지만 열심히 사용은 했던 셈이다.



문제는 회사에 다니면서 시작됐다. 나인투식스(9시~6시) 출퇴근 시간은 가볍게 무시되었다. 해체와 전복의 미덕을 갖춘 포스트모더니즘적 시스템을 도입한 회사 덕분에 식스투나인(6시~9시) 출퇴근을 했고, 때로는 창조적 파괴를 도입한 회사 덕분에 세븐일레븐(7시~11시) 출퇴근을 할 때도 있었다. 아침저녁으로 다이어리를 꾸미는 시간은 쪼그라들어 사라졌고, 그토록 애정하던 종이는 종이 '쪼가리'로 보이기 시작했다.

좋아하는 마음에서 무감각해지는 걸 견딜 수 없었다. 그건 내 안의 무언가 마멸되는 기분이었다. 텅 빈 곳을 채워야 이 물질세계에 간신히 존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철저한 유물론자가 되어 마치 물건이 내 존재를 세상에 증명해 줄 것처럼 밤마다 벌건 눈으로 퍼런 핸드폰 화면을 보며 구매 버튼을 눌렀다. 자취를 시작하며 구매 물건의 영역은 취미를 넘어 각종 주방과 욕실용품까지 넓어졌다.



끝없이 물건을 빼곡히 세웠다. 구석구석 구겨가며 테트리스 벽돌 쌓듯이 벽을 올렸다. 공간이 없다고 물건 쌓기를 포기하지 말지어다. 시시포스가 돌을 올리듯, 아무리 배불러도 디저트 배는 따로 있듯, 물건 둘 공간은 어떻게든 다시 생기는 법이니까.



언제부터일까. 정작 택배가 도착해도 열기조차 귀찮아 방구석으로 쭉 밀어버렸다. 주말이 되어서야 지겹단 표정으로 업무를 처리하듯 일주일 치 택배 상자를 하나하나 뜯었고, 상자를 버리고, 물건을 쌓았다.

'이것만 있으면 나도 청소할 거야.'라며 산 밀대는 베란다 구석에 세워져 의미 없는 배경이 되었다. 배경. 배경. 배경. 물건도 배경. 나도 배경. 물건은 어느새 나를 구석으로 몰았다. 나는 사용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밀려났다. 물건을 사면 살수록 내 세계는 쪼그라들었다. 굴러들어 온 돌이 데굴데굴 제 몸집을 집채만 하게 불려 박힌 돌을 납작이 깔아뭉갠 꼴이었다.

온갖 물건과 타인으로 가득 찬 공간이자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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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나는 멍하니 방을 바라보았다. 천장을 올려보았다가, 벽으로 시선을 내렸다가, 더는 가지 않아도 되는 회사를 떠올리게 하는 시계에서 멈추었다.

'와 내가 평일 낮에, 이 시간에 집에 있어.'

엄청난 감흥은 없었음에도 괜히 감탄을 읊조렸다. 사직서를 던져 버리는 꿈을 이루지 못한 게 아쉬움이라면 아쉬움이었다. 사직서도 디지털로 기안을 올려 팀장, 부서장을 따라 차곡차곡 결재를 받아야 하니 던질 물성이 없었다. 컴퓨터 배경 화면에 자유롭게 떠나는 도비 화면을 설정하지도 못했고, 미친 척 후임자에게 '도망쳐요!'라고 써두는 상상도 이루지 못했다. 아니, 미친 척은커녕 쓰던 물건과 자리를 깔끔하고 완벽하게 정리나 했지. 정작 진짜 내 집의 공간은 정리하지 않으면서, 내 공간인 척하던 회사 자리의 내 물건을 비웠다. 그렇게 아등거리며 들어간 회사를 그만두었는데 남는 아쉬움이 고작 이런 것뿐이라니. 허탈하면서도 가뿐했다. 내 몸을 가득 채워 숨구멍을 꾸역꾸역 막던 무언가가 쓸려 내려간 기분이었다.


시선을 돌려 옆의 거울에서 멈추었다. 거울에는 나와 내 뒤로 쌓인 물건 덩어리들이 하나의 배경이 되어 비치고 있었다. 거울에도 뽀얀 먼지가 쌓여 자체 뽀샤시한 필터를 만들어냈다. 이제 정말 내 공간을 정리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늘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