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미니멀라이프도 아닌,

이야기가 끝나기 전에, '비움'의 포기

by 어찌


버리지 않아도 일상이 차곡차곡 가벼워지고 있다. 꼭 한순간에 죄다 바꾸거나 버려야지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 엄마, 이 생수통들은 대체 왜 안 버리는 거야?

- 놔둬라, 다 쓸모가 있다. 나중에 콩 같은 거 담을 거야.

- 그럼 한두 개만 두고 다 버리면 되잖아...


- 엄마, 이 샐러드 통 버린다? 왜 씻어서 놨어?

- 그거 너무 예쁘지 않아? 나중에 소풍 갈 때 샌드위치 같은 거 싸가면 딱이야.

- 우리 소풍이란 거 안 간 지 10년은 넘은 것 같은데...


물건을 버리려는 나와 사수하려는 엄마. 고백하자면, 엄마 몰래 물건을 버리기도 했는데, 한참 뒤에 엄마가 찾을 때면 "글쎄? 어디에 뒀나 보지. 잘 좀 찾아봐."라며 시치미를 뚝 떼기도 했다. (사죄의 말씀을 드린다. 그런데 대부분 없어진 것조차 몰랐으니 정상참작을 해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퇴사 후, 집에 가득 찬 물건을 정리하며 알게 되었다.

나는 엄마의 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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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말했듯이, 회사에 다니는 동안 계속 물건을 사들였다. 퇴사하고 방 안의 물건을 보며 이상한 기시감이 들었다. 분명 내가 선택해서 입사하고 퇴사했던 회사에서 마치 내가 회사의 손에 골라져 몇 년간 구석에 쑤셔 제대로 쓰이지도 않다가 버려진 물건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어쩌면 기분이 아니라 사실일지도 모른다.) 꼭 저 물건들 같이. 나를 닮은 그것들을 보고 있자니 화가 났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그건 사실 그 사람에게서 나에게 있는 내가 싫어하는 면을 보기 때문이라는데, 물건에 대해서도 비슷했던 걸지도 모른다.


마침 알고리즘에 이끌려 만난 미니멀라이프와 제로웨이스트 생활 영상은 담백하면서도 기묘하게 자극적이어서, 나의 욕망을 결심으로 바꾸는 데 충분했다.

- 그래, 쌓아 둔 물건들도, 플라스틱 물건들도 다 버려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 보는 거야!

마치 행위의 주체성을 회복한 권력자가 된 기분이었다. 내가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다는 전능감과 통제감. 어쩌면 이런 고양감을 은근히 바랐던 걸까. 나는 쓰레기봉투를 펼치고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분명 그러려고 했다. 정말이다.

...다만 본디 세상이라는 게 늘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 선험적 진리였을 뿐이다. 내 미련과 질척임이 문제였다. 아니, 미련 많은 나의 물건들이 하필이면 심하게 멀쩡했던 것이 진짜 문제였다. 나는 어느새 엄마가 했던 말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었다.


- 아직 충분히 쓸 수 있겠는데.

- 두면 나중에 쓸 거 같은데.

- 버리기엔 너무 예쁜데!


잉크가 부드럽게 나오는 펜, 유통기한이 남은 화장품 샘플과 기한은 지났으나 써도 문제없을 것 같은 향수, 한두 장만 쓴 노트, 한두 번 입었던 원피스.


게다가 도저히 쓸 수 없는 물건만 버렸는데도 엄청나게 나오는 쓰레기를 보고 있자니, 아직 충분히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을 버리는 게 정말 환경을 위한 행동인지 의문이 들었다. '사실 가장 친환경적인 행위는 비생산, 비소비라던데. 그럼 이미 산 물건은? 이미 가지고 있는 게 친환경적인 소재가 아니라는 이유로 버리고 새로 사는 게 맞나?' 어쩌면 그냥 과거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안 그랬던 척 시치미를 뚝 떼고 싶은 마음에 불과했던 건 아닐까.


눈앞에 놓인 멀쩡한 것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조용히 물티슈를 가져왔다. 그걸로 하나씩 물건을 닦기 시작했다. 뽀얀 먼지가 하얀 물티슈에 닦이자 검게 뭉쳐졌다.

그래, 한 번 써보기나 해 보고 나중에 버려도 손해 볼 건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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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나의 공간은 물건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이전과 같은 삶을 살고 있다는 숨 막히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버리지도 않았지만 새로운 물건도 잘 사지 않고 있다. 대신 매일 조금의 시간을 내어 내가 공간에 들였던 물건들을 하나씩 사용해 보는 생활을 한다. 버리지 않아도 일상이 차곡차곡 가벼워지고 있다. 꼭 한순간에 죄다 바꾸거나 버려야지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건 아닐 것이다.


미니멀라이프라는 새로운 삶을 살고 싶었다. 나를 숨 막히게 하던 모든 걸 꽁꽁 묶어 버리고, 오직 나만의 나의 삶의 주체가 되고 싶었다. 퇴사도 했겠다, 그런 반짝반짝한 이야기의 끝을 내고 싶었다.


하지만 나처럼 미련 많은 어중간한 인간은 한순간에 결말로 치달을 수 없다. 현실 사정은 '시작 - 원 투 쓰리 - 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 '원 투 쓰리'의 시간이 더 본질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내게 필요한 건 시작과 결말이 아닌, 가는 동안의 중간 이야기니까. 돌멩이를 툭툭 건드려도 보고, 잠시 앉아 물도 마시고 웹툰도 보고 책도 읽고, 따뜻한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그 중간중간에 물건의 들임과 버림 사이, 사용의 생활을 걸어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