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던 물건을 사용하는 즐거움
남에게는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일지라도, 내게는 잘 맞는 물건이 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잘 쓰이지 않는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잘 맞는 것처럼, 일터 역시 어느 한 곳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곳에서도 그런 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게 다 중고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것들이 반복되는 셈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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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서 핸드폰을 보는 척, 남모르게 다른 사람들을 힐끗거린다. 이따금 핸드폰으로 누군가와 메시지를 주고받는 것 같기도 하다. 이윽고 어느 쇼핑백을 들고 있는 사람을 보더니 천천히 다가간다. 여전히 표정은 누구보다 무심하고 덤덤하다. 마치 밀거래에서 언제든 발을 뺄 수 있는 사람처럼 애매한 경계에 있는 사람의 몸짓. 가까이 다가가자 상대도 그를 본다. 마주친 둘 사이의 눈빛에서 모종의 언령 같은 것이 흐른다. 서로의 눈에서 그것을 읽고 나서야 그의 표정은 한결 여유로워진다.
"저... 혹시, 당근?“
해가 갈수록 걷잡을 수 없게 오르는 물가에 먹고사는 일이 퍽이나 퍽퍽해진다. 나만 그런 건 아닌지 채소 이름의 중고 플랫폼에서 본격 시작되었던 중고거래는 오프라인에서도 중고 가구, 가전 판매점이나 리퍼 마켓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됐을 만큼 활성화되었다. 커다란 마트 마감시간에 있던 '유통기한 임박 상품'은 대형 온라인 판매점에도 따로 코너가 만들어졌다.
몇 년 전쯤, 나는 급하게 근무지를 옮겨지며 원룸을 구하게 되어 한창 중고 물건을 사던 때가 있었다. 조금이라도 싼 가격에 사려고 이리저리 발품을 팔았는데, 노력에 비해 중고물건을 잘 사용하는 일은 적었다. 기껏 사서 한두 번 쓰다가 구석에 처박아 놓는다던가, 쓸 때마다 마음 한편이 초라해지는 기분이었다. '언제까지 남이 쓰던 물건이나 사야 할까.'
초라한 마음을 숨기려고 늘 정신승리를 하며 물건을 골랐다. 하자가 좀 많아도 가장 싼 걸로 샀다.
'어차피 회사에서 야근하고 집에선 잠만 잘 텐데, 가장 싼 걸로 사자. 오래 쓸 것도 아닌데 뭐.'
'어차피 좀 쓰다 버리면 되지.'
물건을 들이는데 마음을 들이지는 않았달까. 애초에 이런 마음으로 들인 물건들은 죄다 언뜻 보면 멀쩡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하자가 있었다. 바퀴가 달린 이동식 정리함은 바퀴 하나가 고장 나서 이동식이 아닌 그냥 정리함이라든가, 소형 냉장고의 냉동실에는 절반 넘게 성에가 가득 차서 초초소형 냉장고가 된다든가, 앞에서 볼 때는 멀쩡한데 뒤에 판은 여기저기 흠이 나 있는 전신 거울이라든가 하는 식이었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게 꼭 물건에도 적용될 필요가 있나. 집 안에 들어왔지만, 집 안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지는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옷을 허물 벗듯 내던지고, 초초소형 냉장고 앞에 앉아 아무거나 전자레인지에 돌려 입에 쑤셔 넣고 잠들었다. 언뜻 보면 멀쩡해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엉망진창이었던 건 물건이 아니라 내 일상이었는지도 모른다.
중고물건 사이에서 지내는 내 모습이, 꼭 내 삶 자체가 남이 쓰다 버린 중고 인생 같았다.
하자투성이야.
조금 오글거리지만 원래 사람이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자기 비하나 자기 동정이 극에 달하는 법이다. 당시에는 내 손으로 사놓고는 그 중고물건들이 꼴도 보기 싫었다.
한 치 앞도 모르고.
몇 년 뒤, 프로 자기 비하인은 중고물건 예찬론자가 되었다.
있는 물건이나 먼저 쓰자고 결심한 뒤로 물건 자체를 잘 사고 있지는 않지만, 없는 걸 꼭 사야 할 일이 생길 때면, 앞서 말한 채소 플랫폼이나 집 앞의 보세 옷가게를 먼저 둘러본다.
집 앞 보세집에서 구매한 중고 샌들을 3천 원 주고 구매해서 여름 내내 매일 신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본가에 돌아오며 좌식 화장대가 없어 2칸짜리 사각형 책장을 중고로 사서 가로로 둔 후에, 상단에는 화장품을, 책장 공간에는 책을 정리했다. 밝은 나무 색감이 내 방의 옷장이나 책상의 색감과도 잘 어울렸고, 위에는 집에 있던 페브릭 천을 깔고 나니 그럴듯해 보였다.
남에게는 더 이상 쓸모없는 물건일지라도, 내게는 잘 맞는 물건이 될 수 있었다.
달라진 점은 물건을 들이는 태도에서 시작했다. 싸다고 덥석 '저 구매할게요.'라는 메시지를 날리지 않는다. 잠깐 쓰고 버릴 임시용 물건이 아니라 내가 정말 오래 사용할 물건인지, 집에 있는 다른 가구들과 한 공간에 두어도 잘 어울릴지, 내 게으른 성정에도 잘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한지 등을 따진다. 그러다 중간에 다른 사람이 사가면 그냥 내 것이 아니었겠거니, 하고 만다.
중고인 게 문제가 아니라, 내 일상과 공간, 그 안에 함께 둘 물건을 대하는 마음의 문제였던 셈이다.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게 꼭 사람에게만 적용될 건 아니었다.
하기야, 내 삶도 중고 그 자체가 맞다. 회사를 그만둔 게 세 번째다. 네 번째 직장에 다니고 있다. 중고 백수도 그런 중고 백수가 없었고, 중고 신입도 이런 중고 신입이 없다. 근데, 그게 딱히 슬퍼할 일인가.
첫 번째 회사에서 나올 때, 그 회사에 적응하지 못한 내가 너무 못나 보였다. 여기저기 스크레치가 난 가구처럼. 두 번째에서는 제법 잘 맞았고, 다시 세 번째에서는 초라할 정도로 맞지 않았다. 네 번째는 아주 꼭 맞는 맞춤형 신발 같다. 누군가는 계약직보다 정규직이 월등히 좋지만, 내겐 정규직일 때보다 계약직인 지금이 훨씬 하루를 더 가뿐히 사용하게 해 준다.
누군가에게는 잘 쓰이지 않는 물건이 누군가에게는 너무 잘 맞는 것처럼, 일터 역시 어느 한 곳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곳에서도 그런 건 아니었다.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게 다 중고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것들이 반복되는 셈 아닌가. 더구나 나는 세상에 없던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요즘 기업들에서 그렇게 외쳐대는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인재와는 은하계만큼 거리가 있는 인간이니까.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면, 중고라는 건 어쨌든 버리지 않고 계속 여기저기 기웃대며 사용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중고 물건을 잘 사용하고 있다. 중고 인생이라는 말도 더 초라하게만 다가오지 않는다. 오히려 괜히 어깨가 으쓱해진다.
나, 제법 생활력 강한 악착같은 중고 인간인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