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y, Judo-Girl > 가늘고 길게. 건강하고 오래오래.
"가늘고 길게" vs. "굵고 짧게"
물론 '굵고 길게'가 제일 좋다고 생각하지만, 굳이 위의 두 가지의 선택지 중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굵고 짧게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아무리 길어도 결국 잊히고 소멸되어야 한다면, 한 번 획이라고 굵게 남기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도에 있어서 만큼은 예외다. 유도에서는 "굵고 짧게"의 가치관을 적용하지 않는다. 물론 만약 10대 시절부터 유도를 시작하고 유도가 내 인생의 목표(유도 국가대표와 같은)가 되었다면 생각이 조금 다를 수도 있겠지만 30대에 시작한 나의 유도 생활은 "굵고 짧게"보단 "가늘고 길게"의 가치관을 적용하고 있다. '그토록 사랑하는 유도라면서, 가늘게 한다고?'와 같은 의문이 들 수 있지만 오히려 그토록 사랑하기 때문에 나는 가늘게 유도를 한다. 왜냐하면 유도를 오래도록 즐기고 싶기 때문이다.
30대에 시작한 유도로 내가 국가대표를 할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도 특채로 어떤 직군에서 가산점을 받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저 즐겁게 유도를 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래서 나는 유도를 "가늘게"한다. 가늘게 하는 유도란, 굳히기 자세에서 기술이 들어갈 때 상대의 기술이 제대로 들어간 것을 느끼면 바로 탭(상대에게 "응, 방금 너의 기술 제대로 들어갔어. 내가 졌어"라는 항복의 의미로 상대의 몸을 가볍게 치는 행위)치고, 누르기를 당하면 조금만 숨이 막혀도 바로 탭을 친다. 업어치기 같은 기술이 제대로 들어가서 내가 넘어갈 것 같으면 힘을 줘서 안 넘어가려고 하기보다 홀라당 발라당 넘어간다. 그런 나를 누군가는 유도에 큰 흥미가 없어 설렁설렁 대충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유도를 하고 있다. 누구보다 유도를 좋아하고, 그 유도를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하고 싶기 때문에.
운동을 할 때, "무리"를 하는 건 부상을 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다. 사실 유도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그렇다. 자연을 한번 생각해보자. 순리대로 흘러가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을 것을, 그 순리를 거스르고 훼손하기 시작하니 이젠 자연에도 문제가 잔뜩 생겼다.
그래서 나는 가늘고 긴 유도를 위해 치열하게 깃 잡기 싸움을 하다가도 조금이라도 손이 아프면 깃을 놓고 열심히 유도를 하다가 무릎이 많이 뜨거워지면 자유대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도 체육관 바닥에 누워 쉼을 선택한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끈기와 열정이 없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이 나를 잘 모르는 상태에서 쉽게 단정지은 평가일 뿐, 실제의 나는 최선을 다해 유도를 하고 있다.
살면서 하는 모든 행동을 100%의 풀파워로 해낼 수는 없다. 어떤 것은 힘을 덜 주고 어떤 것은 힘을 더 주면서 내가 오래도록 건강하고 많은 인정을 받으며 사는 것이 현명한 거라 생각한다. 간혹 힘을 덜 준 나의 행동을 보며, 누군가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노력하지 않는다"라는 다소 경솔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평가에 내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 내가 처음 생각한 대로, 계획한 대로의 힘 조절을 하며 삶을 살아내야 한다. 그것이 세상을 지혜롭게 사는 거라 나는 생각한다.
유도를 향한 내 진심을 단순히 '가늘게' 임하는 나의 모습만으로 무시하고 격하시키는 사람이 있다면 그런 사람에겐 내 진심을 보여줄 가치가 없다. 내가 '가늘게' 임한다 할지라도 그 진심은 '가볍지' 않음을 알아봐 주는 사람에게만 내 진심을 보여주고 전해도 충분하다. 그건 유도뿐만 아니라 삶의 모든 부분에서 그렇다.
다만, 한 가지 명심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내가 지금 지속성을 위해 "가늘게" 임하고 있는지, 그냥 "간을 보며" 깔짝대고 있는 건지는 본인은 알 것이다. 그 구분만은 명확하게 하자. 그럼 분명 나의 진심을 알아보고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꼭 나타날 것이다. 오늘도 그 기대와 응원에 부응하여 오늘 하루를 멋지게 채워가는 우리가 되길 바란다.
(간을 보라는 게 아니라, 가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