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정신으로 삶을 잘 견디기, 잘 즐기기
거실로 나와 식탁에서 책을 읽기 위해서는
몇가지 다짐해야할 사항들이 있다.
누가 물마시러 나와서 얼음꺼내는 소리 시끄러워하지않기
지나가면서 무슨 책이냐고 물어보면 친절히 답해주기
옆에서 하품하면서 티비켜면 조용히 노캔끼기
간단하게 살고 싶다면 방에 들어가면 되지만
복잡하더라도
치열한 공존을 택하기로 한 요즘
거실로 나오기 전 나는 마음을 여러번 다잡는다.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로 남을 상처주지 않으려면
사실 정말 큰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심코 누가 내뱉은 말에 상처받지 않으려면
그래서 갑자기 평화로운 저녁시간을
불에 데인 사람처럼 침울하게 보내지 않으려면
더 큰 보이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가까워보여도 가장 먼 미지의 세계가 가족이니까.
가장 큰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내뱉어진 말의 온도에
모든 지난 역사를 가로질러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는 것이 가족이니까.
사실상 보이지 않는 선을 매순간 주의해서
곡예하듯이 음악하듯이 맺어야하는게 모든 타인과의 관계다.
인간은 자기밖에 평생 경험하지 못하기에
그저 평생을 돌다리를 두드려봐야하는 것이다.
금쪽같은내새끼를 한참 즐겨보던 무렵
시간이 지나도 가끔가끔 생각나서 찾아보게 만들었던 사연이 있다.
이혼가정이지만 친구처럼 친근하게 등장했던 젊은 부부.
그러나 아이들이 떼를 무척이나 심하게 쓰고
몇몇 장면은 차마 비공개처리가 되었을만큼
아이들의 소통방식에는 더이상 아이라는 이유로 넘어갈 수 없는 심각한 문제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종종 동물소리를 흉내내는 장면은 무척 오싹하고 기괴했다.
사연이 점차 문제의 중심부에 다다르자 어느새 스튜디오의 분위기는 달라져있었다.
그러나
이윽고 귀엽기만 한 인상을 가졌던 아이들 엄마가 조용히 자신의 어린시절을 털어놓기 시작하고
낯설은 문화충격은 머지않아 아주 친숙한 슬픔으로 바뀌어
거실에 앉아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내 마음을 아주 쉽게 공감시켰다.
너무 외로운 나머지 인간으로 무언갈 더 느끼며 존재하기가 감당하기 어려워질때
어린 아이들은 종종 동물을 흉내내곤 한다고 한다.
자신이 도망친 곳으로 똑같이 도망쳐있는 아이들을 보는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그러나 엄마는 아이들을 포기하지 않는다.
아무리 자기가 부끄럽고 비참해도, 아이들이 부끄러워도 포기하지 않는다.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는 아이를 끌어안고
용수철같이 튕겨져나가려는 그 상처받은 마음을 끌어안고
이해될 때까지 알려주고 또 알려주겠노라고 속삭여준다.
솔루션이 다 끝나고
아주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여전히 빛이 나는 엄마의 모습을 아이들이 바라보며 방송이 끝났었다.
가끔씩 다시 찾아볼 때마다
아이에게 속삭여준 말은
엄마가 엄마 자신에게 한 말은 아니었을까 생각하곤 한다.
맨정신으로 있을 수 있기 위해서는,
인간으로 온전히 존재하면서도 타인과 온전히 관계맺기 위해서는
이토록이나 고도의 에너지가 필요한 법인가보다.
앞으로 거실로 나오겠다는 나의 선택에는
내 얼마간을 당신들에게 항상 열어놓겠다는 선언이자
내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당신들을 조금이라도 다시 아프게하지 않도록 주의하겠다는
혹 내가 상처를 받는다면 조금만 혼자있을 시간을 주면 금방 잊어버리겠다는
나 나름의 엄청난 사랑의 표현이 될 것 같다.
그러니 너무 힘든 날에는
가끔 식탁에 앉아 멍멍거리는 나를 부디 이해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