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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밀리 Sep 18. 2021

책 [뮌헨의 가로등]

모호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선명한 아픔

어떤 연고도 없는 이 책을 처음 집어 들었던 건 ‘독일’때문이었다. 우리 언니는 독일을 참 좋아한다. 그래서 독일에서 생활하는 우리 동포가 썼다는 이야기에 충분히 쉽게 이목이 끌렸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이 책을 사서 집에 데리고 온 건 맨 뒤편에 있던 한 아리송한 문구 때문이었다. 발터 벤야민의 ‘아크 등’ 인용문. 서점에서 이 문장을 읽자마자 무릎을 탁 치고 ‘그래 이거구나’ 하는 깊은 깨달음을 얻었는데 정말 이상하게도 다시 읽을수록 점점 더 모르겠어진다.  


누군가를 아무 희망 없이 사랑하는 사람만이 그 사람을 제대로 안다.


소설은 전혀 어렵지 않은 구조로 흘러갔다. 엄마와 딸 지나의 갈등. 그리고 사춘기 딸의 충동적인 가출 날을 중심으로 하는 짧은 이야기이다. 특히나 독일 이민 가정이라는 맥락 속에서 다문화적 요소들이 잘 녹아져 있었다. 가출한 딸은 한 다정한 방랑자를 만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결국 집으로 다시 인도되게 된다. 사실은 어른 소설(?)에 이런 현자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것 자체가 약간은 반칙일뿐더러 비현실적이고 자칫 잘못하면 동화적으로 흐를 수 있는 위험이 있다(나는 동화를 정말 좋아하지만 장르 간 분별성의 차원에서는). 그렇다 할지라도 나는 짧지만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이 소설이 가지는 단순명료함이 좋게 느껴졌다. 유명하다는 작가의 소설이나 아니면 상을 탔다는 소설들을 읽었을 때 그 뭔지 모를 복잡함과 어려움이 가끔 나는 너무 싫고 나는 모르는 세계에 공감을 강요당하는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어딘가 소박하고, 척하지 않는 단순함이 좋았다.


여러 부분에서 다시금 독일을 좋아하는 우리 언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독일. 반성과 숙고를 아는 나라. 나에겐 왠지 모르게 차분하고 조용한 우리 언니 같은 나라. 가출 소녀 지나도 꽤나 언니와 비슷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다. 언젠가 소확행에 대해 언니와 얘기했을 때 언니가 말했다. 소확행이 중요하다 중요하다 하지만 사실은 그런 소소한 곳에서 행복을 ‘얻어야 하는’ 게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되면 그런 소소한 곳에서도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 아니냐고. 그러니까 요즘 말하는 것들, ‘자 보세요! 이런 소소한 것들에서도 행복이 있답니다 이런 것들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하는 것들은 선후관계가 좀 이상한 것 아니냐고.   

엄마는 우선 사람이 잘돼야 행복해진다고 믿지만 나는 우선 행복을 느껴야 모든 일이 순조롭게 잘 풀려나간다고 생각한다.  


한편, 스스로 ‘죽어서는 안 될 이유는 없다’라고 칭하며 하루하루 노숙으로 생을 연명하는 캐릭터 막스는 도시의 인생에서 파산하고, 한 가족으로부터도 완전히 파산당한 남자이다.그는 길거리에서 공병을 주우며 살아간다. 참 신기하게도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는 이 남자의 말에 공감가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다. 사실은 내가 죽어선 안될 이유 같은 건 원래 없는 것이다. 아래는 막스의 가치관을 보여주는 대사.


세상엔 잃을까 겁내는 것에 비해 잃을 게 그리 많지 않단다.
얻으려 아등바등 살아봤자 얻어지는 게 생각보다 많지 않듯 말이다.



절망과 무망

“공부밖에 모르는 우리 엄마가 들으면 기절초풍하겠지만 난 솔직히 파티 출장 미용사가 되는 게 꿈이에요. 즐거운 날에 예쁘게 보이고픈 사람을 상대하는 게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이에요? 안 그래요?”

“그래, 꿈, 좋지. 특히 네 나이 땐 아주 중요하지. 하지만 난 그 망할 놈의 꿈 때문에 아사 직전까지 갔었다. 한 번은 알약 80개를 삼켰는데 40시간 후에 깨어났지. 한 번은 물속에 빠졌는데 누군가 날 건져냈더구나. 꿈은 그게 무엇이 됐건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무익하고 위험해. 아니 꿈을 가지는 것 자체야 어떻겠니. 꿈이 깨져 당면한 현실로 되돌아오는 게 문제지. 꿈을 가지기 이전보다 훨씬 더 암울하게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니까 말이다.

지나는 가출해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막스를 만난다. 그는 너무 일찍 아빠를 여읜 지나에게 때론 아빠처럼, 삼촌처럼, 친구처럼 잠깐이지만 가출 길동무가 되어준다. 그는 대체로 선하고 다정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생활상에서 비롯했을때, 청소년아이게게 해줄만한 희망적인 이야기는 고갈된 사람이었다. 꿈을 함부로 꾸면 안된다. 꿈이 깨지면 지옥이야. 그러나 감히 막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사실 꿈이 깨지는 것 따위는 별 문제가 되지 않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실은 우리는 꿈을 향해 가다가 꿈이라도 깨진 듯 엎어지고 나서 일어나 보면 오히려 꿈 쪽으로 엎어졌기에 조금은 꿈과 가까워져 있을 때도 있다. 꿈이 깨지는 것보다 무서운 건 바라는 것이 없는 ‘무망’의 상태이다. 바라는 것이 없다는 것은 언제 내 삶이 끝나도 아쉬울 것 하나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소망하는 바를 지키고 있는다면 지금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그곳을 향해 뛸 수 있다. 그리고 아마 이 남자는 아직 소망을 버리진 않았기에, 비록 그것이 작은 바이올린 하나를 소유하는 것일지라도 언젠가 그는 다시 자신의 소망을 향해 살 수 있을 것이다. 아등바등 살아봤자 얻어지는 게 생각보다 많진 않은 세상이라지만, 어떤 것들은 얻게 되면 정말 살만한 인생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좋은 것들은 대부분 눈에 보이거나 손에 잡히진 않는다.  


누구든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게 아니라면

아빠를 멀리 보내고 엄마와 내가 대판 싸워서 화가 난 사람처럼 입을 쑥 내민 채 아무 말 없이 터덜터덜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던 밤, 이 가로등은 잘 익은 오렌지 빛으로 우리가 걷는 길을 밝혀주었다. 친구와 영화를 보고 늦게 집에 돌아오는 밤이면 엄마는 이 가로등 아래에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기다렸다. 걱정하다가 내 모습을 보았으면 기뻐해야 할 텐데 엄마는 오히려 발끈 화를 내며 잔소리를 해댔다. 아, 엄마……정곡을 찌르는 바람에 그 자리에서 못 들은 척했던 막스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얘야, 이걸 알아야 한다. 누구든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게 아니면 그게 망가지든, 썩든, 아예 사라지든 아무 상관도 안 한단다.”


결국 지나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어떤 회귀본능 때문이었다,정도로 정리해버리고 싶다. 나도 어렸을 때 자존심이 쓸데없이 세서 꼭 엄마랑 싸우면 집을 나와 밖을 돌아다니고 엄마를 걱정하게 만들려고 악을 썼었다. 엄마가 먼저 사과하고 나를 데려가지 않는 한 죽어도 내 발로 집에 가지 않으리라. 그런데 사실 해가 지고 또 배가 고파지면 사람 맘이 정말 쉽게 바뀐다. 웬 그동안 한번도 떠오른 적 없던 엄마와의 추억, 엄마가 내게 잘해줬던 기억들이 막 떠오르고 내 발로 집에 들어가 엄마에게 먼저 사과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게끔 만들어놓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배가 고프고 힘들어서 어쩔 수 없이 추억탓을 하며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싸운 적도 없던 것처럼 밥을 차려주곤 했었다. 엄마의 밥. 엄마의 걱정과 회초리. 엄마와의 다툼. 그 모든 것의 근본은 어쩌면 사랑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기억에 남는 작가의 말(소설창작에 관하여)

작가가 소설수업에 들은 말이 사실 무엇보다 더 인상적이다. 소설 속에 감춰야 할 것은 주제 또는 삶의 비의인데, 소설의 이야기를 이루는 상황을 감추어서 소설이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명확하게 제시된 상황 속에서 독자가 주제 또는 삶의 비의를 찾아내게끔 해야 한다. ‘모호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선명한 아픔’을 표현한답시고 ‘선명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모호한 소설’을 만들어버리면 안 된다. 


‘소설가가 애초에 하고자 했던 이야기’
 ‘작품으로 쓰인 이야기’
‘독자가 읽은 이야기’

세 이야기가 삼위일체를 이뤄야한다




소설가의 시간은 어떤 시간도 헛되지 않다. 모든 시간이 소설을 만들어준다.  냄새,  냄새, 변소 냄새가 진동하는 삶의 때와 사람이야기. 독일이라는  나라에까지 가서도 우리말로 소설을 쓴다는  작가는 아마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글을 쓰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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