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같던 1년의 끝엔
70년을 올곧게 연기를 해왔다는 김혜자 선생님은 어느날 말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낀건 삶이란 건 자세히 보면 슬프다는 것.
나는 그 슬픔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있다. 아주 어렸을때 할머니가 떠났을 때 알았고 1년여간의 투병끝에 예감대로, 그러나 예상치는 못한 어느 날에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셨을때도 알았다. 외동딸인 엄마가 세상에 홀로 남겨진 걸 볼때고 슬펐고, 둘째 언니가 결국 작년도 올해도 학업을 포기한채로 돈을 벌고 할아버지 병수발을 하고, 가정을 돕다 서른이 된 걸 깨달았을 때 슬펐다.
그런 슬픔은 이제 눈물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저 밥을 아주 오랫동안 먹지 못한 사람처럼 속이 공허하다 못해 저릿하고 아픈 느낌이다. 그 통증은 이제 어느날 뒷머리를 내리치듯 갑자기 오지도 않는다. 만성 허리통증처럼 그냥 늘 그자리에 있는다. 심한 날도 가라앉는 날도 있지만 없어져버리지 않는다. 그 통증에 배라도 부여잡고 불현듯 주저앉으면 스스로 꼴이 우스워 그냥 덤덤히 살던대로 살게되는 그런 무심한 고통이다.
아무것도 예전같지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곗바늘은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무서운 생의 한가운데에서 늘 자주 슬펐다. 그래서 그 슬픔을 마침내 어느 노배우의 입에서 듣게 되었을 때도 전혀 낯설지 않았다. 출근길 조용한 새벽길을 걷다보면, 혹은 사람들이 복잡히 들어찬 지하철을 따라 몸이 흔들릴 때면, 혹은 왁자지껄 사람을 만나고 떠들던 중 잠깐의 적막 중에 그 슬픔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일을 시작하고, 그러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상을 치르고 그러고 다시 출퇴를 반복하기까지 그러한 생각들을 했다. 산다는 건 참 우스우리만치 짧고 거짓말같은 일인데 그 와중에 인간은 금세 또 배가 고프고 배가 채워지면 사랑이 고프고 감정이 고프다.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하기싫어 그렇게 바쁘게 살았던 건데 또 이 감정의 로타리로 되돌아온 나를 보니 사람 참 쉽게 변하지 않는다싶다. 이 감정이 옅어지기를 또 기다리며 한동안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