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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날의 설벽을 찾아서

일본 알펜루트 가는길 1

by 이순열

인천공항 탑승장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 하늘이, 정말 명품이었다.

어쩌면 떠나는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특별한 하늘이 아닐까.



오랜만의 일본여행 이다. 언제가 마지막 이었던가? 딸 아이와 오끼나와를 갔을때인지, 아니면 아내와 홋카이도를 갔을때인지 가물가물 하다. 제주도에 가는 시간 만큼이면 도착하는 거리지만, 언제부터인지 마음은 그보다 더 멀고 더 깊은 시간을 건너는 것 같다.


문득 6월까지는 볼 수 있다는 일본 알프스의 수십 미터 설벽이 떠올랐다. 지금쯤은 다 녹아 사라졌을까? 녹았어도 잔설은 조금이나마 남아있을지, 설벽이 사라진 또 다른 계절의 얼굴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예전 우리나라 전설의 투수 선동열 선수가 나고야의 태양이라는 닉네임으로 명성을 날렸던 그땅을 밟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입국장 통로에 붙여진 나고야성의 포스터 였다. 내게 "환영해! 어서 와"를 건넨다. 오랜만에 혼자 하는 여행이린 그런지 설렘 반, 걱정 반으로 마음은 조심스럽다.



입국장을 빠져나오자 공항 한쪽에 전시된 럭셔리한 모습의 보잉 비행기가 눈길을 끌었다. 스타벅스와 콜라보인 듯 무료입장 표시가 유혹의 손길을 보냈했만, 기차 시간이 촉박하여 아쉬움을 뒤로하고 발길을 옮겼다.



나고야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 기차표를 끊었다. 천엔을 내자, 기차표와 십엔짜리 동전 두 개를 받았다.우리나라에선 거의 사라진 현금 거래, 동전과 기차표의 낯선 감촉에 오랜만에 아날로그 감성이 살아난다.



이번 여행의 첫 미션은 알펜루트 JR 패스 발권이었다. 티켓을 판매하는 직원과 영어가 통해 어렵지 않게 5일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패스를 손에 넣었다. 가격은 24,000엔. 여정의 열쇠를 손에 쥔 기분이었다.



그런데 대도시의 번잡함이 익숙지 않아 나고야에서의 첫날이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서 도심을 벗어나기로 결심했다

일본 3대 온천, 게로 온천으로 가기 위하여 기차에 올랐다.

도심을 벗어나자 창밖 풍경이 점점 목가적으로 변했다. 산에 접에들자 계곡을 보이기 시작하고 계곡을 따라 기차가 달렸다. 생각지 않게 보너스를 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내, 게로역에 도착했다.

게로온천에 온것을 환영한다는 입간판이 나를 반겼다. 예약한 저녁식사 시간에 늦을까 싶어 택시를 탈까 하다가 지도를 보니 가까운 거리에 있어 서둘러 걸으니 20여분이 소요 되었다.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숙소는 의외로 훌륭했다. 올드한 느낌은 나지만 그래서 정겨운 느낌이 들었다. 정원도 경치도 훌륭했다.



다다미 향이 은은히 배인 청결한 방, 혼자 쓰기엔 큰 방이다. 무엇보다 창밖으로 들려오는 강물 소리와 철교를 건너는 기차 소리가 여행 첫날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여 주었다. 문득 영화 박하사탕 속 한 장면이 떠올랐다.철교 위 설경구의 외침처럼,“나… 다시 돌아갈래…” 그 소리가 강 건너편 어딘가에서 울리는 듯했다.



일본 음식은 먼저 눈으로 먹는다고 하는데 저녁 식사는 거의 예술이었다.

익숙하면서도 조금은 낯선 맛, 그리고 계속해서 나오는 음식들 덕에 식사 시간이 어느새 한 시간을 훌쩍 넘겼다.

가이세키는 처음이었지만, 이것이야말로 음식이라는 매개를 통한 문화와 정서의 전파임을 느꼈다.



아침도 같은 자리에서 준비된다고 한다.

내일 아침엔 또 어떤 감동이 기다리고 있을까.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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