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펜루트로 가는길 2
일본 알프스 여행을 계획하면서, 처음에는 알펜루트의 관문 도야마로 직항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성수기가 아니라 그런지 직항 노선은 없었고, 결국 나고야를 경유해 4시간 가까이 기차를 타고 도야마로 가야 했다.
이동 만으로 하루가 지날 수도 있는 여정 이었지만, 문득 생각했다.
‘기왕 가는 길, 천천히 돌아보면 어떤가.’
구글지도를 보며 기차 노선을 따라 살펴보니 산악지형에 계곡들이 이어져 있었다.
기차를 타는 자체가 멋진 여행의 일부가 될것 같았다.
일본을 여행할때면 필수코스인 온천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온천이 들어간 지명을 살펴보니 '게로온천'이 보였고 첫날을 이곳에서 머무르기로 하였다. 다음날 시간적으로 경유할만 지명을 검색해서 살펴보니 정취 가득한 소도시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고즈넉한 전통거리의 도시, 다카야마(高山).
차창밖으로 평화로운 들판과 산, 거칠은 물결을 품은 계곡들이 펼쳐져서 게로에서 기차로 1시간 반의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다카야마 역에 도착했다. 역청사가 고풍스러운 건물인줄 알았는데 세련된 신축건물이라 예상이 빗나갔다.
해발 약 600여미터의 산중 도시라서 시원할 줄 알았다. 그러나 햇살은 생각보다 뜨거웠다. 그늘에선 습도가 낮아 산들바람이 불면 시원하게 느껴졌지만, 한 걸음만 나와도 한여름의 기운이 그대로 전해졌다.
에도 시대의 거리 풍경이 고스란히 살아 있는 이곳은 '작은 교토'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았다.
고즈넉한 목조건물이 이어지고, 전통 공예품과 향토술을 파는 가게, 스타일리시한 감성 카페들이 한 골목에 어우러져 일본의 옛 멋과 현대의 감각이 절묘하게 섞여 있었다.
한편으론 전주의 한옥마을 같기도 했고, 또 한편으론 어디선가 본 듯한 유럽의 작은 마을처럼도 느껴졌다.
실제로 거리에는 동양인보다는 유럽에서 온 가족 단위 여행객들이 많았다.
그들이 느릿하게 걷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걸음을 늦췄다.
천변을 따라 아기자기하게 자리 잡은 집들, 맑게 흐르는 강물, 그리고 그 곁에 선 수공예품과 농산물을 파는 작고 정겨운 가판들. 진열된 공예품 하나하나, 가판대에 놓여진 햇볕에 윤이 나는 복숭아와 토마토, 지나치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모습은 이탈리아 피렌체의 아르노강을 떠올리게 했다.
도시 한복판인데도 시간은 느리게 흘렀고, 바쁜 일상 속에서 놓쳐왔던 ‘여유’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다시 도야마로 향하는 열차 시간이 다가왔기에, 나는 이 감성 가득한 도시와 작별을 고해야 했다. 그래도 여행자의 눈도장은 확실히 찍었다
관광지도에 표시된 명소 몇 곳을 천천히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이 도시가 가진 고요한 아름다움은 충분히 마음속에 새겨졌다.
다카야마, 그 이름처럼 ‘높고 조용한 산속’ 같은 도시. 다음엔 꼭 하루쯤 여유 있게 머물며 진짜 이곳의 숨결을 더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