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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아 Sep 27. 2023

의심 (疑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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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 (疑心)   

 

명사

1.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

2. 과거(科擧) 문제의 하나. 경서(經書) 가운데서 의심을 일으킬 만한 것의 뜻을 설명한다.     


어릴 적 나는 나에 대한 의심이 없었다.

친구들과 농구 시합 중 내가 속한 팀이 지고 있는 상황이면 

머릿속에서는 내가 만화 속 주인공인 마냥 우스운 대사가 절로 나왔다.     


‘훗, 이제 시작해 볼까?’ 

    

짧은 혼자만의 생각이 끝나면 당장이라도 지고 있던 점수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현실과 이상은 늘 다르다는 것은 이 작은 농구 게임에서도 알 수 있다.

결과는 패배했고 내가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승리에 취해 포효하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그때는 결과에 개의치 않았다.    

 

내가 말하면 이루어지고, 

내가 하고자 하면 된다. 

늘 나에 대한 판단은 의심이 아닌 확신이었다.


어쭙잖은 실력과 배경환경을 지녔지만

왠지 모르게 자신감에 넘쳤다.     


내가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하면 잘할 수 있다는 확신.

잘생긴 외모도 아니면서

어떤 이성이든 나에게 넘어오게 할 수 있다는 확신.

백종원 선생님과 아무 관계도 아니면서 

내가 하는 사업은 분명 성공한다는 확신.

내가 하는 말들은 후배든 친구든 누구에게나 다 뼈가 되고 살이 된다는 

혀끝으로 시작되는 교만함의 확신.

무엇보다 나는 분명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성공한 인생을 산다는 확신.

(정작 아직도 인생에 성공의 정의는 찾지 못했다.)     


그야말로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어찌 보면 이런 모습이 나의 매력이 아닐까?

자기 위로도 해본다.     

확신이 가득한 인생을 살고 있는 이런 나에게도 변화가 찾아왔다.     


“어느 순간이라고 말해야 할까?”     


정확한 때를 기억할 수는 없다. 

자연의 섭리인 마냥 아주 자연스러운 변화였으니 말이다.     

확신이 의심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미래에 대한 자신감 넘치는 확신들은 의심이라는 단어로 

내 머릿속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이건 도전해 보자니 걸리는 게 많은 걸?’

‘남들도 다 평범하게 사는데 굳이...’     


확신에 찬 느낌표는 수많은 물음표 대체가 되었고 매 순간 나의 행동은 조심스러워졌다.

당돌했던 모습은 사라져 가고 추진력하나만큼은 남들에게 인정받았지만 

그 모습마저도 사라져 버렸다.

그렇게 나는 세상을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나 자신을 의심에 눈초리로 보기 시작했다.     


‘넌 할 수 없어'   


악마의 속삭임인 듯 하지만 이 소리는 그저 의심에 지배당한 

내 마음의 소리일 뿐이다.    

 

‘그래, 그땐 그랬지...’     


과거의 나는 그랬고, 

현재는 나는 변해있다.

변한 이유를 찾자면 동물이 생존을 위해 진화를 선택한 것처럼

나도 생존을 위해 선택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미래의 나를 조금 더 안전하게 만들고 싶었나 보다.  

   

“확실히 알 수 없어서 믿지 못하는 마음”     


의심에 뜻은 그러하다.

우리 미래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나의 미래도 당신의 미래도 그 누구의 미래도 말이다.

간혹 예언가랍시고 세상의 일을 예언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들조차도 자신의 결말이나 당장 내일 일어날 일도 알 수 없다.   

  

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도전 또는 도박을 걸만큼 용감하지 못하다.

의심이 많아서이지 않을까?


미래를 의심하고 현재의 나와 타협을 하며 

미래에 변화될 내 모습을 애써 부정하는 거처럼 말이다.     

물론 인생을 살다 보면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야 할 때도 있고,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지 않으려면 의심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 대한 의심의 수많은 물음표는 가끔 느낌표로 바꿔보고 싶다.   

  

어릴 적 뜀박질 한 번에 흙먼지 올라오는 학교 운동장으로 돌아가 보려고 한다. 

확신이 넘쳐 땀방울 흘리는 그때의 내 모습을 가져오고 싶다.      

의심만은 중년에서 확신에 차있는 중년으로 다시 한번 전환점이 오지는 않을까?  

오늘 하루는 내 글에 대한 의심보다는 확신을 가져보면서

느낌표를 가득 채워 발행 버튼을 눌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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