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아 Nov 03. 2023

내 핸드폰에 무서운 것이 살고 있다.

유튜브를 삭제하다.

핸드폰에 무시무시한 포식자 혹은 괴물이 살고 있다.

이 녀석은 네모난 핸드폰에 살고 있다.

손가락과 눈으로 시작해서 내 몸을 서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조종하고 있다.

그 덕분에 나는 초점 없이 흐리멍덩한 눈으로 아침과 저녁을 마무리하고는 한다.

내 의지를 자양분 삼아서 내 시간과 내 집중력을 빼앗아 가는 녀석이었다.     

 

‘유튜브’

‘릴스’

‘인스타그램’     


내가 주로 하는 핸드폰 속 애플리케이션이다.

세상은 따라 갈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이제 아이들도 유튜브 혹은 영상매체를 접하는 시기도 제 각기 다르지만 빨라졌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거 같다.


스마트 폰 덕분에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도 누워서 유튜브를 시청하는 세상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뜨자마자 하는 것은 주섬주섬 핸드폰을 찾는 것이고 잠들기 전까지 하는 것도 핸드폰이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누구와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모르긴 몰라도 대부분 핸드폰일 것이다.     


나에게도 변화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영상매체 또는 SNS 속 무한스크롤은 나에게 무한한 재미를 선사했다.

대신에 나에게서 시간과 집중력을 빼앗아 갔다.     

피곤하다는 핑계로 누워서 작디작은 핸드폰 화면을 보고 있으며 나는 산 송장처럼 눈만 껌벅껌벅거렸다.


과연 밤에만 그럴까?

상쾌해야 할 아침에는 눈뜨자마자 핸드폰을 잡아들고 인스타며 쇼츠며 잠을 깬다는 명목으로

아침에 시작도 핸드폰과 함께 했다.     

이런 날이 반복이 되자.

나는 한 가지 결심을 하게 되었다.

최근에 나에게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있는 유튜브와 릴스를 삭제하기로 말이다.

그렇게 나는 유튜브와 릴스가 없는 하루를 살게 되었다.

일상에 변화는 생각보다 빠르게 느껴졌다.  

   

'일상'


더 깊게 말하자면 시간의 변화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내 알람은 5시 50분으로 맞춰져 있다.

나름 출근하기 전 독서도 하고 블로그도 하고 글도 써보겠다고 야심 차게 맞춰둔 알람 시간이다.      


하지만 이불 밖으로 나오는 건 쉽지 않았고

이전에 말했듯이 이불속에서 핸드폰을 들고 결국 소중한 30~40분을 날려버리기 십상이다.

이럴 거면 굳이 알람을 맞추고 일찍 일어나는 이유가 뭘까 싶기도 했다.     

어플을 삭제하고 나서의 아침은 상쾌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전날 저녁부터 숙면을 취했다.

잠들기 전 짧은 영상과 무한 스크롤과 알고리즘의 늪에서 벗어난 것이다.    

 

‘좀 더! 좀 더! 자극적인 영상들’     


내 뇌는 짧지만 하루동안 평온을 찾아다는 듯 단잠을 잤다는 것을 표현하듯이 상쾌한 아침으로 신호를 보내왔다.

눈을 뜨자마자 나는 거실로 나올 수 있는 힘이 생긴 것이다.   

   

다음으로 나에게 다가 온 변화는 가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식사 후 동료들과 함께 벤치에 앉아서 커피를 한잔 했다.

모두 핸드폰을 바라보고 작은 화면에서 나오는 뉴스며 영상이며 정치이야기로 서로의 대화가 아닌 일방적인 전달을 받고만 있었다.    

 

나는 할 게 없었다.

그래서 멍하니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바라볼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바람과 나뭇잎이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솨~ 촤~ 솨~ 촤’     


글로 보면 조금 우습지만 내가 들은 가을의 소리이다.     

마지막으로 핸드폰을 보는 시간이 줄었기에 당연히 아이와 아내와 대화할 시간이 많아졌다.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정보를 멈춤으로 인해 그 시간만큼 꼭 해야 하는 가족의 대화를 되찾은 거 같았다.

마치 보너스 시간이 생긴 기분이었다.


애플리케이션을 지우고 나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좋아하는 NBA 하이라이트와  낄낄거리며 보던 SNL 하이라이트를 못 본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든지 사라진 유튜브를 다시 꺼내올 수도 있고 릴스는 다시 다운로드하면 그만이다.

잠시 시들해진 인스타그램도 언제든 피드를 올리고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다.

         

나는 핸드폰을 없애거나 아날로그 시대를 외치며 스마트 폰을 거부고 시대를 역행하고 싶지는 않다.

스마트 폰은 너무도 편리하고 삶을 윤택하게 돕기 때문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시간의 자유를 만끽하고 싶다.   



사라져 버린 유튜브와 기타 SNS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방 손님과 주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