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아 Nov 06. 2023

부(富)의 상징

레고와 전동칫솔

나와 아들은 아내에게 잔소리를 듣는다.

남자는 여자에게 잔소리 먹는 게 당연하다는 아내의 이론

늘 현실이 되어 두 남자 귀에 쏙쏙 박힌다.

아내의 이론이 검증을 거쳐 증명이 되는 순간이다.     


오늘 저녁도 어김없이 아내의 잔소리가 귀에 들린다.

물론 잔소리의 원인은 허 씨 성을 가지고 있는 두 부자에게 있다.   

  

“집이 이게 뭐야! 레고 빨리 정리 안 해?”

“장난감 다 가져다 버린다!.”     


아들과 나는 서로 눈을 마주치고 씽긋 웃어 보인다.

38살 아빠도 6살 아들도 아내가 한다면 하는 성격인 것을 정확히 알고 있다.

그러기에 부랴부랴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레고를 정리한다.     


목수이자 농부인 아버지 덕분에 어릴 적 집에는 나무토막들이 즐비했다.

이것들은 나에게 훌륭한 장난감이자 친구가 되어 어린 시절을 함께 했다.   

   

나무토막에 질려서 인지 무슨 객기로

어머니한테 흔치 않았던 레고를 사달라고 했다.

그것도 비 오는 날 말이다.

물론 결과는 영혼이 가출될 정도로 혼이 났다.

비 오는 날 빗물과 함께 눈물이 마르지 않게 흘리며 후회한 기억이 있다.

물론 그 후로 내입에서는 레고라는 말이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레고가 흔하지 않은 시절이었다.  

    

즉,

레고는 부의 상징 같은 것이었다.     


나에게는 노마에프라는 어린이 영양제는 레고와 마찬가지로 부의 상징이었다.

어느 날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친구부모님이 아들의 건강을 생각해서 준비해 둔 영양제는 바로 노마에프.

어찌나 부럽고 탐이 나는지 한 번만 맛을 볼 수 있다면 소원이 없을 거 같았다.

친구한테 사정사정해서 한 알 입에 넣어보면 사탕보다 맛은 없지만 먹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쫀득쫀득한 노마에프는 입에서 사르르 녹아들기 충분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전동칫솔.

전동칫솔은 제법  자란 후 나만이 느끼는 부의 상징이었다.

전동칫솔을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하면 뭔가 성공한 인생 같아 보이는 건 도대체 왜인지 모르겠다.  

    

시대를 거치면서

부의 상징이라는 것들이 존재한다.

생각해 보면 매우 쓸데없는 것이고 과연 이런 단어가 필요할까?라는 의구심도 든다.     


지금에서야 쿨한 척 생각을 하지만,

애석하게도 어린 시절 내가 정의를 해둔 부의 상징이라는 단어처럼 가지고 싶지만 가질 수 없는 것들이 존재했다.  

   

가지고 싶었던 레고.

먹고 싶었던 노마에프.

쓰고 싶었던 전동칫솔.    

 

지금은 아들에게 주어진 수많은 레고들.

이 레고들은 어린이날, 생일, 크리스마스 등 아들이 세월의 풍파를 견뎌내면 훈장처럼 얻어낸 소중한 장난감이다.     


그리고 아들만이 먹을 수 있는 비타민과 영양제.

아들의 건강에 관심이 높은 아내가 계절에 맞추고 아들의 컨디션마다 준비해 둔 것들이다.

마치 어릴 적 동네에 약장수가 오면 만병통치약처럼 여기는 이름 모를 약을 준비하는 것처럼

아내는 인터넷이라는 약장수를 통해 이름 모를 약이 아니라

후기가 좋은 영양제를 심사숙고해서 정성스럽게 준비한다.     


마지막으로 작고 귀여운 치아에 맞춰진 스파이던 맨이 그려져 있는 전동칫솔.

가장 최근에 산 부의 상징이다.

오래전부터 아들이 마트에서 눈여겨본 스파이더맨 전동칫솔을 이번에는 내가 앞장서서

아들 편에 서서 아내에게 말도 안 되는 필요성으로 설득하며 사게 되었다.

아마 아내도 못 이기는 척 사준 게 분명하다.

    

내가 이루지 못한 부의 상징들을 아들한테 사주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대리만족이라도 하듯이 나도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생각하는 부는 이렇게 소소한 것을... 그때 그 시절에는 왜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졌을까?  

   

나는 쌓여가는 레고와 설명서를 보면서 온유가 하루빨리 커서 레고에 관심이 없어지기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그런 날이 오면 저 수많은 레고는 고스란히 내 레고가 된다.

다시 설명서를 보고 하나씩 조립해 가면서 멋지게 장식할 날을 상상해 본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내의 잔소리는 들려오고 나는 빙그레 웃는다.

잔소리도 레고를 향한 내 마음을 막을 수는 없나 보다.

혹시 잃어버린 레고 부품은 없는지 뒤져가면 레고를 정리한다.    

 

이 모든 어릴 적 나만의 부의 상징은 아들이 아빠의 마음을 대신 충족시켜 주었다.

그러므로 이제 나만의 새로운 부의 상징은 아들이 되어버렸다.

내 부의 꿈을 이루어준 아들이 있기에 나는 부자가 되었다.   

    

그리고 자식한테 뭐든지 해주고 싶지만 못해줄 때 그 무엇보다 마음 아픈 부모의 마음도 이제야 헤아려 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핸드폰에 무서운 것이 살고 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