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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아 Nov 07. 2023

색약도 세상을 보고, 그리고 합니다.

선을 넘지 못한 자.

“온유야 이거 무슨 색이야?”

“이거 연보라.”     


아들한테 색을 가르쳐주는 대화가 아니다.

아들과 색칠 놀이를 하면 자연스럽게 오가는 대화이다.

정말 내가 색을 잘 몰라서 아들에게 물어보는 질문이다.  

   

나는 적록색약이다.

다행스럽게도 아들은 모든 색을 구분할 줄 알고 5살 때부터는 나에게 색을 가르쳐준다.

가끔은 귀찮아하는 반응이지만,

언제나 나에 색깔 선생님이 되어준다.   

  

초등학교, 중학교 신체검사 중 빠질 수 없는 게 바로 시력검사이다.

왕만 한 숟가락으로 왼쪽, 오른쪽 눈을 번갈아 가리고 시력 검사를 마치고 나면 이어서 테이블에 앉아 숨은 그림 찾기를 해야 한다.      

바로 색맹검사이다.


수많은 아이들 속에서 내 차례가 되면 유독 시간이 오래 걸린다.

나에게는 혹독한 테스트이다.

요리보고 저리보아도 나에게 수많은 색의 점들은 그저 점 일뿐 쉽게 숫자를 읽어내지 못했다.

겨우 겨우 읽어내고 나면 결과는 다른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답이었다.

땀이 삐질삐질 사춘기 시절 색약은 숨기고 싶은 콤플렉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는 적록색약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초등학교 중학교는 시골 학교에서 다녔다.

시골 학교치고 사람이 적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색약인 학생은 내가 유일했다.

     

‘이걸 영광이라고 해야 하나?’

    

모든 신체검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면

친한 친구이든 친하지 않은 친구이든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나에게 질문을 한다.

바로 자기들만의 확인사살이다.    

 

“야! 저거 무슨 색이야?”

“저 나무 무슨 색으로 보여?”     


질문한 친구들을 일렬로 세워서 눈을 콕콕 찔러주고 싶었지만.

자기와 다름이 신기해서 질문하는 친구들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는 마음에 모두에게 웃으면서 오답을 말해주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거치면서 이 질문은 너무 지긋지긋했고 언제부터인가는 식상했다.

나에게도 질문에 대한 내성이 생긴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남자들로 이루어진 남고에서는 색약은 중요하지 않은 관심사가 되었다.      

더 이상 질문에 답할 필요가 없었다.


이런 나에게 모순적인 재능이 있었다.

바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손재주 많은 아버지와 어머니 덕분인지 만들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형은 글쓰기에 재주가 있었고,

누나는 화가를 꿈꾸며 미술을 전공했다.

피는 못 속인다고 나 또한 글을 쓰고 있고 아직도 근본도 없는 그림 아니 낙서를 하기도 한다.

     

학창 시절 본인이든 친구이든 밑그림은 잘 그렸는데

색을 입히는 순간 망하는 친구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나이다.    

  

 소묘는 A+ 였지만, 물감을 입히는 순간 유치해지고 망하기 일 수였다.

이런 내가 고등학교 때는 미술부 활동도 했다.

어차피 색약이라 미술은 전공할 수 없다는 선을 그은 후부터는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되었다.

미술을 하지 않는다면 삶에 불편함은 크게 없다.

단지,

남들이 보는 색과 내가 보는 색의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최근에 미술관 큐레이터와 인연이 되어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다.

미술이 좋았지만 색약이라서 시도조차 안 했다는 과거에 대해 푸념을 해보았다.     


“색약이 뭐 어때요? 그게 작가의 새로운 기법이나 특징이 될 수 있는데.”

“지금이라도 해보는 건 어때요?”

    

제법 신선했다.

미술은 안된다! 라며

스스로 선을 그어서 시도조차 안 했었는데 난 왜 그런 생각은 하지 못했을까?  

   

지금이야 색맹안경 렌즈등 많은 것들이 있지만

나름 옛날 사람인 나에게는 그것들은 미래의 물건이지 내가 접할 수 없는 것들이었고 세상이 흑백이지 않은 것에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전재준이라는 인물이 어찌나 측은하던지 학폭 가해자 역할에 몰입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드라마를 보면서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나는 전재준의 얼굴이 아니라는 것이다.

색약의 완성은 얼굴일까? 저런 얼굴에 적녹색이라면 참 할만했을 거 같다.



    

아들이 태어나고 건강하게 커가면서 자연스럽게 엄마와 색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나는 안심을 했다.

좋은 것만 물려주고 싶은 부모 마음은 누구나 똑같을 것이다.

  

나는 선을 그으며 살아왔다.

선이라고 글로 쓰지만 사실 포기이다.

그 보이지 않는 선은 누구도 그어주지 않았지만 스스로 만든 경계선이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 그리고 무럭무럭 커 가는 아들.

그리고 이 두 남자를 바라보는 아내까지.

어떤 일이든 미리 선을 긋지 말고 일단 해보는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얼마나 많은 선을 그으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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